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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이 개정됨에 따라 B형 간염보균자(건강보균자 또는 바이러스 보유자)의 취업제한이 적어도 법적으로는 근거가 없어졌다.

'식품접객업, 의료업, 교육기간·흥행장·사업장 기타 다수인이 집합하는 장소에서 직접 공중과의 접촉이 빈번하여 전염병의 전파가 우려된다고 시장·군수·구청장이 인정하는 직업에서 취업제한을 할 수 있다'는 전염병예방법상의 질병에서 'B형 간염'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직종의 여러 기업들에서 사실상 B형 간염 건강보균자에 대해 여러 가지 형태의 취업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에서 법적으로 취업제한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기업들이 B형 간염바이러스 건강 보유자나 간염환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공중보건상의 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채용신체검사에서 B형 간염 표면항원(HBsAg)이 양성으로 나오면 정밀검사를 요구하고, 병원에서 e항원(HBeAg)검사나 DNA 검사를 해 오라고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검사결과가 양성인 경우, 전염성이 있다거나 '활동성'이라고 분류하여 탈락시키는 것이다. 어떤 곳은 바이러스 건강보유자를 아예 처음부터 배제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는 B형 간염의 전염성에 대한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B형 간염에 있어서 e항원이나 DNA 검사치는 바이러스가 활발한 자기복제를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로 사용된다. 따라서 이 기간에 혈액이나 간조직 내에 바이러스의 수적 증가와 간세포의 파괴가 심해진다고 보는 것인데, 따라서 이 기간이 상대적으로 전염력이 높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B형 간염의 전염성이 환자가 가진 바이러스 수자나 간염의 심한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 즉 현재까지 확인된 전염경로(수혈, 성접촉, 출산을 통한 감염) 이외의 일상적인 접촉에서는 e항원이 양성이더라도 전염의 문제에서는 바이러스 건강보유자와 다르지 않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사실 B형 간염바이러스의 표면항원(HBsAg)은 타액, 모유, 눈물, 위액, 대소변 등에서도 검출되고 이를 통한 전염의 가능성을 의학적으로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수혈이나 성접촉, 출산시 감염이 아니면서 특별히 감염경로를 밝힐 수 없는 감염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e항원 양성자인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군대생활 수준의 집단적 접촉도 전염성에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우리나라 국방부의 연구결과도 있지만, (의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지속적으로 칫솔이나 면도기를 같이 사용한다거나 서로의 입술이나 혀에 상처를 줄 수 있을 정도로 키스를 나누고 생활하는 정도의 특별한 상황이나 관계가 아니라면 굳이 의식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간염바이러스 보균자가 7%나 되는 우리나라에서 간염바이러스 보유자와의 일상적인 접촉은 특별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리고 e항원이 만성간염의 활동성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가 아님에도 e항원 양성자를 만성활동성간염으로 판단하는 것도 명백히 잘못된 지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B형 간염바이러스 보유자를 차별하는 두 번째 이유는 노동능력상실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생각된다.

현재 만성활동성 간염환자의 경우는 국가공무원 채용에도 제외된다. 건강을 업무능력의 일부로 보고 정상적인 업무를 감당할 수 없는 환자에게 일을 시킨다는 것은 어쨌거나 불합리하다는 것에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B형 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이든 만성간염 환자든, 현재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사회활동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병에 걸리거나 악화될 가능성만으로 취업을 제한할 명분은 없다. 건강이 나빠질 가능성만으로 취업자체를 제한한다고 한다면, 흡연이나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는 다른 생활습관들도 파악해서 질병 발생 위험이 높은 사람은 미리 취업을 제한해야 공평하다.

언젠가 암환자가 회사를 상대로 산재소송을 내서 인정된 예외적인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B형 간염바이러스 보유자에 대한 취업제한은 기업이나 국가가 개인의 질병과 건강문제를 모두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건강악화시의 책임을 미리 묻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B형 간염의 문제는 의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직업선택의 자유나 평등권을 얘기해야 할 만큼 사회적으로도 많은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다시금 느끼는 것이지만, 바이러스 보유자나 환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간염에 대한 지식이나 상식은 아직도 부족하고 왜곡되어 있는 것들이 많다.

한때, 간염이 전염될 수 있으니 술잔을 돌리지 말라고 정부에서 대대적인 광고를 했던 적이 있었다. 어쩌면 국민들의 간염에 대한 인식은 그 당시와 비교해서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개인 기업들의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나 환자들에 대한 차별은 개선되기 힘들지도 모른다.

적어도 의료에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인식과 행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법과 제도보다 앞서 해결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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