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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후둑이는 소리에 새벽 잠이 깼습니다.
객주집 주인 노릇을 하다보니 오고가는 많은 나그네를 만나고 삽니다.
돌아보면 모두가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시간이란 흐르기 쉽고, 사람이란 잊어버리기 잘 하는 존재라서 새로운 사람이 오면 그 전의 기억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난 겨울에는 오래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사람이 둘 있었습니다. 이정윤과 엄태호.

태호는 군대 마지막 휴가를 보길도 여행으로 정하고 혼자 왔습니다.
제대하면 곧 복학하게 되는데 말년 휴가를 의미있게 보내자는 뜻으로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보길도 여행을 계획했다고 합니다. 물론 제대를 앞두고 말년 휴가를 오는 군인들은 가끔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태호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말년 휴가라는 소중한 시간을 자기 혼자만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2박3일 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낮에는 보길도의 이곳 저곳을 걸어서 여행하고, 저녁 때 집에 돌아와서는 밤새도록 편지를 쓰더군요.

그는 군 생활하면서 그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을 같은 부대 후배 80명 모두에게 80통의 편지를 써서 부치고 돌아갔습니다.
그의 군 생활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나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군 생활 마지막은 참으로 아름다웠을 걸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정윤.
정윤이는 부산에서 왔다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고3이 되기 전에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여행을 왔다더군요.

정윤이가 오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오후 4시가 넘도록 연락이 없습니다.
해남읍에 도착하면 전화하기로 했는데 잘못하면 배를 놓치게 생겼습니다. 4시 반이 지나서야 해남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옵니다.
땅끝에서 4시 30분 보길도행 막배는 이미 떠나고.
이제 방법은 노화도 산양진을 거쳐서 오는 길밖에 없는데, 해남읍에서 땅끝까지 버스로 1시간 가까이 걸리니 5시 20분 산양진행 막배도 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땅끝 가는 버스시간을 알아보고 다시 연락하라고 했더니 6시 20분에야 버스가 있답니다.

오늘 중으로 들어오기는 틀렸습니다.
어떻게 하지, 해남사랑(http://haenam.org) 조용진 선생님 댁에다 하루를 재우는 수밖에 없겠군.
혼자 전전긍긍하다 결론을 내리고, 조용진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정윤인데요, 저 지금 택시 탔어요. 기사 아저씨가 산양진 뱃시간에 맞출 수 있대요."
그렇지, 그 방법도 있었지.
나는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그 짦은 순간에 해남에서의 숙박비와 택시비가 별차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 정윤이가 택시를 타고 땅끝까지 오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노화도 산양진에 도착한 정윤이는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보길도행 나룻배 선착장이 있는 이목리까지 왔습니다.
나룻배 막배 시간도 지나 도리없이 내가 대절선을 구해 이목리까지 가서 정윤이를 태우고 돌아왔습니다.
참 어렵게 보길도까지 왔습니다.

동천다려로 돌아오는 길에 암만해도 걱정스러워 물었지요.
"부모님 허락은 받고 왔니?"
"예, 배타고 나서 엄마한테 전화로 허락 받았어요."
"그럼 이야기도 않고 나왔단 말야."
"어쩔 수 없잖아요. 이야기하면 못 가게 할 게 뻔한데 뭐하러 이야기해요. 하지만 괜찮아요, 이제 허락 받았으니..."
나는 더 이상 할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윤이는 남녀 공학인 고등학교의 풍물반 상쇠로 풍물반을 이끌고 있으며, 교내 락밴드의 매니저까지 맡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사진 공부도 열성이더군요.
보길도에 있는 내내 수동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보길도의 풍경들을 구석구석 담아냈습니다.
정윤이는 2박3일의 짧은 여행을 아쉬워하며 돌아갔습니다.
암만해도 부모님이 신경 쓰였던 것이지요.

이틀 동안 정윤이와 대화하면서 나는 열여덟살이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어른들이란 청소년들을 대할 때 도무지 자신이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어른이었던 양 행동합니다. 그래서 청소년들 또한 충분히 분별력 있고 생각이 깊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청소년들이란 그저 가르치고 규제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길 뿐, 도무지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제도 교육의 강제와 기성세대의 억압 속에서도 정윤이는 자기 삶을 책임 있고, 당당하게 꾸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거나 아예 알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많은 청소년들이 정윤이와 같이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청소년 시절도 그렇지 않았던가요.

정윤이가 돌아가고 난 아침, 방명록에 남기고 간 정윤이의 글을 읽어봅니다.

"보길도에 와서 많은 일을 겪고 그러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갑니다. 솔직히 여행 온 목적은 암 것도 안하구 놀구, 잔소리 하는 사람 없는 곳에서 진득히 생각하려는 것이었는데, 제 성격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보길도라는 곳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네요.
고 2의 마지막을 혼자서 추억을 만들어 장식하고 싶었어요.
앞으로 일주일 후면 고3입니다.
대학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숨이 나오는 건... 아마도 제가 하고픈 일에 도달하는 필수관문이라 그런가 봅니다.
어쩜 한국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한숨 쉴 수도 있겠죠.
이제 다시 각박한 세상 속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맘의 여유를 되찾고 가는 거라 좀 각박해도 예전처럼 불만스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정윤이의 당당하고 옹골찬 모습에 나까지 기분 좋아지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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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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