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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처음 조우한 베이징의 하늘은 흑빛 안개였다. 그 길은 창자앙(長江 양쯔강)의 대홍수로 불어난 물을 인간띠라도 만들어 막아보려 했던 힘든 상처를 이겨내는 이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열망에서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창지앙의 중류인 우한(武漢)으로 가기에 앞서 나는 중국의 상징적인 장소인 톈안먼광장에 들렀다. 때마침 중국 국경일인 10월 1일 이어서 광장에는 발디딜 틈 없을 만큼 수많은 중국인들이 서로의 움직임으로 밀려가고, 밀려오고 있었다.

공산화 기념일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왜 톈안먼 광장으로 모일까. 그들에게 아직도 생생할 핏빛 역사가 이제는 화려한 빛깔로 다듬어진 저 보도 아래에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그 아래에서 여전히 개벽을 희망하는 그 함성들은 중국 역사에서 어떤 의미일까.

조너선D. 스펜스는 미국인이기는 하지만 중국에 가장 가깝게 근접한 중국학자임에 틀림없다. 에드가 스노우나 페어뱅크 같은 유명한 중국학자가 있지만 스펜스의 중국에 대한 이해는 접할수록 놀랍다. 다름 아니라 중국인 스스로도 접근하기 어려운 중국의 문학, 미술 등 문화의 전반을 배경으로 청조 이후 중국을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천안문'(정영무 옮김/이산 간)은 중국에 비로소 신사고가 흡입되기 시작하던 1895년부터 100년간의 중국역사를 문화 중심으로 깔끔하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저자가 급변하는 역사 속에 "폭력과 소생의 틈바구니에 끼였던 중국 남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쑨원, 장제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혁명의 중심 인물들보다는 그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때로는 막 피어나는 나이에 무참히 꺾여야 했던 꽃들에 대한 기록인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정치적이고 거대한 스케일은 아니지만 작가의 힘들고 어려운 기록의 여정을 볼 수 있는 책이자, 중국의 근원적인 힘이 무엇인지를 음미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베이징의 여행에 이 책만큼 동행하기 알맞은 책은 없을 것이다.


톈안먼, 중국 역사의 대변 장소

베이징을 여행하며, 톈안먼을 거치지 않는 이는 드물다. 톈안먼은 중국인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구궁(古宮 자금성)의 남쪽을 지키는 문이다.
"중국인은 1912년 마지막 왕조가 몰락할 때까지 황제의 권능이 바로 이 문에서 나온다고 믿었다."(13p)
하지만 이런 거대한 성도 잃어버린 민심과 급변하는 세계 정세 아래에서는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이 책의 앞 부분은 이 무너져가는 성채에 도전하는 세 명의 젊은 학자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쓰러져가는 왕조의 과거에 참가하려 베이징에 온 캉유웨이(康有爲)와 량치차오(梁啓超)고, 한 명은 처음부터 무력투쟁으로 나선 광둥(廣東)의 쑨원(孫文)이다. 두 유학자는 이미 쇠락한 왕조의 과거에 미련을 갖기는 했지만 그들의 시작은 일본과 굴욕적으로 맺어진 시모노세키 조약에 항의하는 '공거상서'를 통해 시작됐다.

1000여명의 과거 응시자들의 분노를 닮은 이 공거상서사건은 첫번째 천안문 사태인 셈이다. 이후 캉유웨이는 서태후와 권력투쟁중이던 광서제를 만나 개혁을 논하면서 청조를 유지하자는 입장을 보인 반면 량치차오는 만주족의 청조에 대한 미련을 서서히 버리기 시작했다. 젊은 쑨원 역시 홍콩은 물론이고 미국 등지를 돌며 대청투쟁의 깃발을 올렸다.

당시까지 청왕조의 굳건한 땅이던 톈안먼은 전면에 있는 광장과 더불어 공산주의의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했다. 톈안먼의 전방에는 수미터에 달하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매년 새로운 얼굴로 중국인들을 만나고, 도로 건너에 세워진 홍기 게양대를 비롯해, 인민영웅기념비가 있고 전면에는 마오쩌둥 기념관이 측면에는 인민대회당 등이 있어 완전한 공산의 성지가 됐다.

톈안먼의 북쪽으로 두안먼(端門), 위먼(午門) 등을 지나면 불과 100년전만 해도 구중궁궐의 역할을 했던 황제들의 거처가 있다. 그곳에서 싸운 최후의 쟁투자들은 광서제와 서태후다.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젊은 황제와 서태후의 투쟁은 한편으로 진지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미 몰락한 집안의 주도권잡기에 지나지 않았다. 태화전(太和殿)을 주축으로 거대한 규모로 자리한 구궁은 먼 여행객들에게는 쉽사리 지리해지기 쉽다.

서태후의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한 가장 큰 일은 이허위앤(이화원)을 세운 것이다. 화합을 도모한다는 이름과 달리 이허위앤은 쇠락한 청조의 몰락을 부추겼다. 하지만 군비를 써야 할 돈은 물론이고 외국의 빚을 끌어들이고, 조세까지 저당잡히며 이허위앤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젊은 황제와 캉유웨이는 개혁을 논의했고, 광서제는 곧바로 개혁을 추진했다.

책의 두번째 주인공의 서태후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꿈꾸던 젊은 황제 광서제의 부름을 받은 탄쓰퉁(譚嗣同)이다. 이 젊은 청년은 광서제의 도움으로 친위 쿠테타를 일으키지만 사전에 체포되어 처형된다. 여섯동지와 같이 처형된 그는 "나는 도적떼를 죽이려 했지만 세계를 바꿀 만한 힘을 갖지 못했다. 이곳이 내가 죽을 곳이다. 기쁘다 기쁘다!"(40p)며 죽음을 기껍게 받아들였다.

서태후의 과욕으로 만들어진 이화원은 290만 평방미터의 별궁 전체의 3/4가 인간의 힘으로 판 호수일 만큼 거대한 궁궐이다. 서태후가 사색을 위해 거닐었던 긴 복도인 장랑을 비롯해 불향각, 인수전 등 거대한 전각과 대리석 배인 석방(石舫)은 당시의 부흥을 일깨운다.

구궁, 이허위앤 등은 베이징의 가장 큰 관광명소다. 이밖에도 베이징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유산들은 많다. 명청조 당시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톈단(天壇)공원을 비롯해 구궁을 조망할 수 있는 진상궁(景山)공원, 라마양식의 거대한 백탑이 인상적인 베이하이(北海)공원 등은 베이징의 중요한 유산이고, 인상적인 장소들이다.


이름은 만리장성, 경관은 룽칭샤

베이징 시내여행도 중요하지만 베이징에서 버스로 두시간여 거리에 있는 만리장성은 여행객들에게 빠지지 않는 명소다. 하지만 만리장성을 비교적 조망하기 쉽게 만들어진 빠다링장성 등에서 보는 장성의 위용은 그다지 특이하지 않다. 만리(실제로는 만오천리 가량이다)의 장성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수킬로미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곳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룽칭샤는 50미터의 댐위에 만들어진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낸 장관으로 용의 기상을 느끼게 해 준다. 50미터의 댐 위로도 하늘을 깍아지를 듯 솟아있는 바위들에서 맹렬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저 기상들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혁명에 자신을 투신했던 이들에게 넘쳤을 것이다.

책은 초기 사회주의 운동의 꽃으로 18세의 나이에 '혁명군'이라는 글을 써서 청조의 미움을 받아 옥사한 쩌우롱, 혁명운동에 투신했다가 이름처럼 쓸쓸한 "가을비, 가을바람, 애간장을 끊는구나"(77p)라는 다소 낭만적인 시를 남기고 처형당한 추진 등 많은 혁명열사들을 살려낸다.

하지만 이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1919년 5월 4일 톈안먼에서 작은 소요로 다시 시작된 학생들의 움직임은 중국 의식 근대화의 가장 큰 기점인 5·4운동의 기폭제였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딩링 중국 현대를 만든 이들의 사상과 의지는 성숙됐다. 스펜스 역시 당시 그들의 모습을 찾아내어 혁명의 기틀을 점검해 낸다.

물론 그 가운데 가장 극적인 삶은 산 이는 딩링일 것이다. 젊은 날 새로운 배움의 길로 떠나 자유연애를 주창하고, 같은 작가의 길을 걷던 후예핀을 만나서 사랑을 나누었지만 후가 31년 어처구니 없는 과정으로 체포되어 처형당하자 그녀의 길은 중국 현대사의 급류와 함께 흘러갔다.

중국 근대 문단에서 시의 거장이었으나 31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쉬즈모, 따스한 가슴을 가진 막시스트로 35년 취푸바이의 처형 등이 계속되면서 중국은 현대를 향한 암울한 전진을 계속했다. 스펜스는 이들 개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풀어낸다. 중국인 스스로도 해내기 쉽지 않은 문학작품과 역사의 접목을 깔끔하게 해낸다는 점에서 스펜스의 능력을 더욱 돋보인다.

중국 근대 작가중에서 가장 빼어난 인물 중에 하나였던 라오서 역시 혁명 기간 동안 힘들게 창작활동을 계속한다. 그리고 그는 운좋게 살아남았다.

1949년 10월 1일 톈안먼에 마오쩌둥, 주더 등 중국공산당의 영웅들이 서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포했다. 드넓은 광장에 도열한 인민들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그 나아지지 않음에 대한 항의와 억지가 계속되었다. 딩링과 라이서 등은 창작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57년 시작된 딩링에 대한 비판을 포함해 크고 작은 문인들에게 대한 가학은 여전했다. 그리고 66년 라오서가 구궁의 남쪽에 있는 태평호에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는 상태로 죽었다. 그의 죽음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의 역사에 신호탄이었다.

톈안먼의 역사는 푸른 빛이라기보다는 지금의 하늘처럼 언제나 어두웠다. 그런 베이징의 날씨도 간혹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빛을 보여주곤 한다. 1976년 4월 5일 톈안먼 광장은 저우언라이의 추도인파의 시위로 다시 한번 폭력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책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89년에는 광장의 많은 부분이 피로 얼룩져야 했다.

81년 쓴 저작의 마지막에 스펜스는 그 근대사를 거치면서 수없이 부침한 작가 딩링을 비춰본다. 문혁 이전에 헤이룽장으로 추방되어 다행히 광기의 역사에서 생명을 부지한 그녀는 후에 다시 정치적으로나 문학적으로 복권된다. 젊은 날의 미모는 사라지고, 노인의 모습으로만 남은 그녀의 모습에서 스펜스는 새로운 희망을 말했다.

책의 마지막은 베이다오(北島)라는 필명으로 오늘(今天)에 실린 시 한편으로 끝난다. 생명, 사랑, 자유 등의 단어에 대한 중국에서의 가치를 아포리즘처럼 읆은 이 시에 예술은 "억만 개의 태양이 /깨진 거울에 반사되어 빛난다"로, 인민은 "달은 찢겨 번득이는 밀알이 되어 정직한 하늘과 땅에 뿌려진다"로 기록된다.

덧붙이는 글 | 책소개

천안문, 문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명저

이 책은 역사와 문학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중국 역사를 풀어내는 스펜스(Jonathan D.Spence)의 초기 저작중에 하나다. 1981년 출간되어 수많은 저작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도 중국 근현대사를 조망하는데 있어 독특한 저술방식의 매력이 사라지지 않는 저작이다. 스펜스는 이밖에도 청조 이후 중국사를 풀어쓴 '현대 중국을 찾아서'(김희교 역/이산 간)와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주원준 역/이산 간) 등을 저술했다. 두 책 역시 중국현대사에 대해 쉽게 정확하게 기술한 책으로 유명하다. 출간이 준비중인 '강희제' 역시 청조의 대표적인 황제인 강희제를 통해 중국사의 진수를 찾아낸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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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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