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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동 송파도서] 02) 421-6961,6962 / 016-313-4402 / 011-471-9927

가. 일요일에 찾아가서 헛걸음치다

한강 아래 강남과 잠실쪽에 있는 헌책방을 자주 다니는 동무가 지난 달 즈음 무척 괜찮은 헌책방 한 군데를 보았노라 얘기했습니다. `헌책방'만은 아니고 문닫는 만화방이나 대여점 책들을 정리해 주고 새로 문여는 가게 매매도 알아봐 주는 일도 하는 곳이지만 그곳에 가니 놀랄 만큼 만화책이나 무협 이야기, 소설 무리 들을 건질 수 있노라 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서울에서 한강 위에 살고 있고 거기까지 가려면 하루 날 잡고 가야 하기에 그림의 떡처럼 생각했고 그 언저리 동네 사람들이 즐겨 찾아가면 좋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스무 날 쯤 앞서 일요일 낮에 맘잡고 찾아갔죠. 일요일이지만 딱히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어서 `오늘이 날이다' 치고 가자고요. 그런데 웬걸. 먼 길을 돌아돌아, 잠실역에서 2호선에서 8호선으로 갈아타는 머나먼 길까지 걸어서 갔건만 문이 닫혀 있습니다. 굳게 닫힌 문 옆에는,

"안내"
- 영업시간 : AM 09:30 - PM 19:00 일요일읍 쉽니다
- 주차시 스티커 발부 주의!

이런 작은자보(?)가 붙어있지 뭡니까. 동무는 내게 "8호선 석촌역 4번 나들목으로 나가"면 된다고 했으나 이렇게 일요일은 쉰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기에 뒷통수를 한 대 맞았죠. 이때 뒷통수가 무척 아팠습니다.

그래서 동무가 말한 <송파도서>가 있는 건물 `성은빌딩' 왼편 골목길로 주욱 들어가면 있다는 고서점 <예원>이란 곳도 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원>도 마찬가지로 일요일엔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나. <송파도서>는 괜찮은 곳이다

서울에서 동대문 즈음 도매상들이 많은 골목 맨 끝까지 가면 <신진서점>이라는 만화책만 파는 헌책방이 하나 있습니다. 만화가 이우일씨가 1995년에 <씨네21>에 소개한 만화책 전문 헌책방은 여럿 있었지만 2000년까지 오는 동안 `헌 만화책방'은 모두 문을 닫고 <신진서점> 하나만 남았죠. 송파동에 자리한 <송파도서>는 만화책만 다루지는 않으나 `헌 만화책방'인 <신진서점> 보다 만화책 가짓수나 부피가 훨씬 큽디다.

엊그제 어느 문닫은 만화대여점에서 만화책을 잔뜩 들어왔다는 소식도 들어서 그럼 그 가운데 쏠쏠한 녀석들이 꽤 있겠구나 싶었는데 참말 그렇더군요. 빌려 주고 못 받은-빌려간 사람이 빌려간 줄도 잊어버려서- <백성민-토끼,서울문화사> 다섯 권과 마찬가지로 빌려 주고 뺏긴 <오세영-봄과 신작로,서울문화사>를 이곳에서 다시 채웠습니다. <김 진-조그맣고 조그맣고 조그마한 사랑이야기,시공사> 세 권도 잡고 <문흥미-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집,대원>도 두 권 건지고 <오사무 야마모토-머나먼 갑자원,서울문화사> 6,7권과 <정훈이-트러블 삼국지,대원> 1,2권도 건졌습니다.

어제 저녁에 잠깐 찾아가서 한 시간이 못 되는 동안 살피니 김소진 마지막 단편소설을 묶은 솔출판사 책도 보이고 <김동화-못난이> 세 권 전질도 두어 짝 보입니다.

다. 수천 수만 권에 이르는 만화책 운명은?

제가 찾아간 어제 <송파도서>에서 일하는 분들은 문닫은 대여점에서 들어온 만화책을 갈무리하느라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수천 권에 이르는 만화책들을 짝대로 맞추고 버릴 것 솎아내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책방 들목과 안쪽엔 아직 풀지도 못하고 끈으로 꽁꽁 묶어둔 만화책만 몇천 권씩이나 됩디다. 그리고 가게 바닥에는 얼추 짝을 맞추고 그린이(작가)대로 나눈 녀석들을 주욱 늘어놓았고요.

<송파도서>에 있는 책장 또한 문닫은 대여점에서 쓰던 책장들입니다. 안쪽 깊숙한 곳에는 푹신걸상(소파)도 있는데 이 또한 문닫은 대여점에서 가져왔지 싶네요. 참으로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가고 계시더군요.

대여점에서 풀려나온 이 엄청난 만화책, 무협 이야기, 소설 들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물론 새로 문을 여는 대여점이 있다면 알뜰히 거두어가겠죠. 하지만 그렇게 가져가기 앞서는? 바로 이 동네 언저리에 사는 분들이나 좋은 책을 건지고픈 이들 손에 달려 있습니다.

라. `노동조건'은 가장 좋은 곳이 아닐까

만화책 열다섯 권을 무척 싼 값으로 가지고 나오며 `영업시간' 작은자보를 다시 봅니다. 아침 아홉 시 반에 문을 열고 저녁 일곱 시에 닫는 곳. 저녁 여섯 시 반 안팎 일을 마치는 이 동네 언저리 직장인들이 찾기 만만치 않습니다. 더구나 일요일은 쉬니까요.

그러나 다른 헌책방들이 책방임자들이 당신들 몸을 혹사하면서 가게를 꾸려가지 않고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쉰다는 원칙이기에 참 보기 좋았습니다. 사실 다른 헌책방들은 `쉬는 날이 없다'시피 하고 `열 시나 낮밥 나절 문을 열어 밤늦게까지 장사하기'에 따로 `영업시간'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헌책방만이 갖는 남다른 구석이지만 이렇게 `영업시간'을 또렷하게 못박아 책방살림을 꾸리는 이들도 쉴 땐 쉬며 장사를 한다면 더 기운차게 일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 * <송파도서> 찾아가는 길 *
 
 하나. 지하철 8호선 석촌역 4번 나들목에서 나와 곧바로 30미터
 - 갈아탈 때는 2호선 잠실에서는 되도록 갈아타지 않도록. 잠실에서 내려서 
   찾아가면 `갈아타는 길'이 너무 멈
 - 갈아탈 때는 5호선 천호역이 아주 좋음. 5-8호선 천호역은 갈아타는 길은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좋은 보기임. 5호선에서 내려 계단만 서른 칸 올
   라가면 바로 8호선이 다님.
 
 둘. 버스는 "송파입구" 정류장
 - 16, 30-1, 32, 63-1, 65, 70, 522, 570-2, 571-1, 812, 813-2, 861, 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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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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