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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은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앞에 '헌'을 붙인 헌책방은 여느 책방과 사뭇 다릅니다. 새책방을 찾아 세계 여행과 전국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없지만 헌책방을 찾아 세계 여행과 전국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있답니다. 헌책방은 사람을 끄는 달콤한 맛이 있지요.

새로 나온 책은 가까이 찾아갈 수 있는 새책방에 가서 보지만, 사람은 '새' 책만으로 자기 앎(지식)과 슬기를 채우지 못합니다. 늘 새 사람만 만나지 않듯 책도 새 책만 읽지 않지요. 오래도록 뭇사람들에게 읽히는 좋은 책들이야말로 아름다운 앎과 슬기를 주지요. 헌책방은 바로 이렇게 오래도록 읽히는 좋은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집 언저리뿐 아니라 퍽 멀리 찾아가야 하는 곳까지 헌책방을 찾아간답니다.

그럼 우리 헌책방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헌책방은 '헌책방거리'와 같이 한데 모여서 장사하는 틀에서 벗어나 지역 헌책방으로 달라져 갑니다. 우리 책 문화 현실은 썩 아름답지 않지요. '좋은 책'을 낼 수 있는 사회 환경도 없을 뿐더러 '상업성'이 있는 책만 내서 돈벌겠다는 마음이 출판노동자 사이에 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화관광부는 출판사 스스로 좋은 책을 내도록 돕거나 이끌지 않기에 출판사 스스로 좋은 책을 내는 일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처럼 된 현실입니다. 그래서 1980년대 첫머리까진 그나마 괜찮은 책 - 상업성에 그다지 눈밝히지 않고 낸 꼼꼼한 책 - 들이 많아서 이런 물건들이 헌책방거리를 중심으로 퍼질 수 있었지요.

그러나 이젠 책다운 책이 줄고 더불어 책 읽는 사람도 줄어들기에 지역 헌책방 틀로 달라지고 있답니다. 청계천에서 문닫은 헌책방은 많으나 지역마다 새로 문을 여는 헌책방도 조금씩 늘고 더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게 지금 모습입니다.

헌책방들은 왜 힘들어 하는가

책이 없던 70년대 끝무렵까지는 헌책방에서 버려지는 책이 없었지요. 문제모음 한 권도 값지던 때니까요. 그런데 80년대 접어들고 90년대로 넘어오면서 독재정권이 이끈 개인-상업주의 속성이 우리들 가슴 깊은 곳으로도 스며들었습니다. 과열입시체제나 개인취업 문제만이 '지상최대과제'로 떠오르는 만큼 사람들이 자기 앎과 슬기를 다스리는 책읽기와 자기 몸가짐 마음가짐 다잡기는 거리를 두지요.

놀이, 술, 운동, 살곶이(섹스), 영화처럼 잠깐 즐겁게 노니는 것들만이 으뜸이 되다 보니 오래오래 자기 스스로를 이끄는 '책' 같은 문화는 자리가 좁아지고 출판노동자도 이런 책에 발맞춰 스스로는 돈되는 책을 '한 번 보고 버려지는 책'으로 만듭니다. 그리하여 요즘 헌책방들은 '장사가 힘듭'니다.

장사가 안 되어 힘들어 하는 곳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헌책방들은 "책손님들에게 팔 만한 책이 안 나와서" 더 힘들어 합니다. 장사야 이리저리 때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책다운 책이 줄어 책손님도 사갈 책이 줄고, 그러다 보니 책손님들도 자꾸 줄기에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랍니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

그러나 헌책방에서 팔 만한 책-고서든 요즘 책이든 - 이 줄었다 해도 책손님이 지난날과 견줘 아주 많이 준 일도 큰 걱정거리죠. 우리나라에서 '책'과 얽힌 일은 '문화'가 아니라 '장사'일 뿐이라서 - 사람들 생각과 정부 태도가 - 헌책방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살 길을 찾습니다.

외대 앞 <신고서점> 금호동 <고구마> 대치동 <책창고>는 자기 책방에 있는 책을 홈페이지로 띄워 올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헌책방은 새로 셈틀을 익히고 책 목록을 올릴 만한 사람도 모자라고 투자비도 없습니다. 가게를 넓히고 책장을 늘려 '손수' 찾아오는 책손님이 더 많은 책을 볼 자리를 만드는 일에 무게를 두지요. 헌책방이 새책방과 가장 크게 다른 구석은 바로 "손수 찾아와 손수 고르고 뒤져서 책을 본다"는 대목이니까요.

청계천에서 가장 어려워 하는 구석은 '가게 임대료'입니다. 다른 헌책방도 마찬가지죠. 헌책방은 술집이나 밥집처럼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곳이 아닌 만큼 30-40만 원만 넘어도 버거운 형편인데 청계천거리 임대료는 이보다 훨씬 높답니다.

사실 책을 가장 많이 읽을 사람은 열대여섯 젊은이부터 대학생들입니다. 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여 자기 머리와 마음을 닦는 일, 정부가 헌책방을 문화공간으로 깨우쳐 뒷배하는 일, 헌책방임자들이 꿈(희망)을 갖고 젊은세대에게 차근차근 책방을 물려주어 새롭게 거듭나는 일이 어울려야 힘겨움을 떨쳐낼 수 있습니다. 지금 퍽 많은 헌책방이 젊은세대에게 시나브로 책방을 물려주면서 새롭게 거듭납니다. 헌책방이 처음에 생길 때도 그랬듯 오로지 자기들 힘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렇다면 헌책방을 찾아가는 책손님들도 스스로 달라져야겠죠. 책 읽을 겨를이 없다는 말은 변명입니다. 전태일 열사도 불밝히며 그 어렵던 근로기준법을 읽어냈습니다. 전태일 열사에 견주면 참말로 아늑하게 살아가는 우리들 아닙니까. 책읽을 겨를은 스스로 내야 하며, 우리 머리와 마음을 닦겠다는 몸가짐으로 헌책방을 찾아야 헌책방임자들도 희망을 갖고 더 부지런히 일할 수 있답니다. 이것이 대학생들이 지금 할 일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바라던 책읽는 대학생이 되는 일" 말이죠.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한성대학교 신문사에서 헌책방 현황과 문제와 대안을 대학생 눈높이에 맞춰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한성대학교 학생뿐 아니라 오마이뉴스 독자님들도 함께 나누면 좋으리라 생각하고 이곳에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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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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