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하마평

 

.. 하마평에서 강력한 수상 후보로 꼽혀 있던 모 베테랑 작가는 그 시점에서 벌써 50을 헤아리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고 ..  <마루야마 겐지/조양욱 옮김-산 자의 길>(현대문학북스,2001) 114쪽

 

"강력(强力)한 수상(受賞) 후보(候補)로 꼽혀 있던"은 "거의 수상 후보로 꼽혀 있던"이나 "상 받을 사람으로 손꼽히던"으로 다듬고, "모(某) 베테랑(veteran) 작가(作家)는"은 "이름난 아무개 작가는"이나 "아무개 씨는"으로 다듬어 봅니다. "그 시점(時點)에서"는 "그무렵에"나 "그때까지"로 손보고, '발표(發表)하고'는 '내놓고'나 '써내고'로 손봅니다.

 

 ┌ 하마평(下馬評) : 관직의 인사이동이나 관직에 임명될 후보자에 관하여 세상에

 │    떠도는 풍설(風說). 예전에, 관리들을 태워 가지고 온 마부들이 상전들이

 │    말에서 내려 관아에 들어가 일을 보는 사이에 상전들에 대하여 서로 평하였

 │    다는 데서 유래한다

 │   - 새 정부 구성을 앞두고 하마평이 무성하다

 │

 ├ 하마평에서

 │→ 온갖 이야기에서

 │→ 여러 이야기에서

 │→ 사람들 이야기에서

 │→ 이런저런 이야기에서

 └ …

초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한자를 가르치는 분들은 글자인 한자 하나하나만 가르쳐서는 말에 얽힌 속내를 제대로 알도록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한자 하나를 이룬 획마다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를 깊이 들여다보고 뜯으면서 다른 한자와 얽히며 어떠한 이야기를 빚는가를 함께 밝혀야 비로소 제대로 익힐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 배우기란 한자를 배우는 자리에서만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어를 배우건 일본말을 배우건 마찬가지입니다. 글자만 외따로 외워서는 글이고 말이고 배울 수 없습니다. 그저 글자와 낱말과 글월을 외울 뿐입니다.

 

한글과 우리 말을 배우는 자리에서도 똑같습니다. ㄱㄴㄷ을 가르치거나 가나다를 가르친다 해서 한글이나 우리 말을 배운다고 할 수 없습니다. ㄱ에 깃든 속내를 밝히고 '가다'와 '하다'와 '나다' 같은 밑낱말에 담긴 뜻을 풀면서 다른 말마디와 엮으며 돌아볼 때에 비로소 한글을 빚은 얼개를 살피면서 우리 말에 서린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예나 이제나 우리네 학교교육에서는 한글과 우리 말을 옳고 바르게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예나 이제나 우리네 학교교육에서는 한글과 우리 말뿐 아니라 한자와 영어 또한 옳고 바르게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한자는 지식으로 가르치고 영어는 세계화 수단으로 가르칩니다. 한글과 우리 말은 따로 안 가르쳐도 된다고 여길 뿐 아니라, 이마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합니다. 저마다 다른 누리에서 저마다 다른 삶을 담아서 나누는 말이고 글인 만큼, 한자에는 중국사람 삶과 문화가 깃들고 영어에는 서양사람 삶과 문화가 깃듭니다. 그리고 우리 한글과 말에는 한겨레 삶과 문화가 깃듭니다.

 

한겨레 삶과 문화라 할 때에 우리들은 으레 궁중 삶과 문화를 떠올립니다. 한자(또는 한문) 또한 우리 말이나 글이라 일컫는 이들은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 삶과 문화를 궁중사람 눈높이와 테두리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임금님도 한겨레요 지식인도 한겨레이며 양반이나 사대부나 신하나 권력자도 한겨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돌아보는 우리네 삶과 문화는 온통 이들 '한자를 쓰는 권력자와 한문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지식인'한테만 기울어져 있습니다. 정작 지난날 우리 나라를 이루던 99%가 되는 여느 사람들인 농사짓고 고기잡고 길쌈하던 수수한 사람들 삶과 문화한테는 눈길을 보내지 않습니다. 수수한 옷차림을 우리 옷 문화라 여기는 사람이 없고, 수수한 밥차림을 우리 밥 문화라 헤아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는 동안 우리들이 쓰는 말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들이 쓰는 말을 담는 그릇인 글, 곧 한글이 어떤 모습인가를 알맞게 살필 줄 아는 눈매란 거의 없습니다.

 

 ┌ 이번에 상을 받는다는 소리를 듣고 있던 아무개 씨는

 ├ 이번에 상받을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던 아무개 씨는

 ├ 사람들이 이번 상을 받으리라고 손꼽는 아무개 씨는

 └ …

 

'하마평'은 우리 말이 아닙니다. '하마평'은 중국말입니다. 또는 '하마평'은 한국땅에서 여느 사람들을 짓누르며 다스리던 권력자들이 즐겨쓰던 말입니다. 같은 한겨레이면서 여느 한겨레하고는 섞이지 않고 중국겨레와 닮으려고 하던 사람들이 사랑하던 말입니다.

 

오늘날 떠도는 '하마평'이라는 낱말은 바깥말입니다. 한자말로 하자면 외국어인 '하마평'입니다. 이 낱말을 한글로 적어 놓든 한자를 밝혀서 적든, 이 낱말을 읽거나 헤아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나라 한겨레붙이가 두루 쓸 만한 낱말이 아닌 '하마평'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 터전을 돌아보면 우리 말이 아니어도 널리 쓰고 있습니다. 바깥말이건 아니건 그다지 살피지 않습니다. 한글이건 아니건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을 들을 사람과 글을 읽을 사람을 굽어살피지 않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 눈높이에서 밀어붙이거나 쏟아내는 생각없는 말과 글이 넘칩니다. '차 대는 곳'이라 하면 가장 좋고 '차댐터'라 할 수 있으며, 하다못해 '주차장'이라 하면 넉넉하지만, 'parking'이나 'P'라고 적어 놓는 남녘땅 한겨레붙이입니다. '싸 가셔요'라 하면 더없이 좋고 '들고 갈 수 있습니다'라 할 수 있으며, 적어도 '포장'이라 하면 되지만, '테이크아웃'이나 'TAKE-OUT'이라고 적어 놓는 남녘땅 한겨레붙이입니다. 죽이면 '죽'이지 왜 '粥'이라고 적어야 할까요. 버스면 '버스'이지 왜 'BUS'라고 적어야 할는지요.

 

말이 되는 말이란 사라지고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로 빚는 아름다움이 깃들지 못합니다. 말로 빚는 겉치레가 판치고 있습니다. 말로 나누는 사랑이 아니라 말을 앞세우는 권력이 넘치고 있습니다.

 

 ┌ 하마평이 무성하다

 │

 │→ 말들이 많다

 │→ 말이 많다

 │→ 온갖 말이 떠돈다

 │→ 갖은 이야기가 넘친다

 └ …

 

말을 배우는 까닭은 내 생각을 갈무리하면서 내 생각을 이웃하고 나누는 한편 이웃사람 생각을 주고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우쭐거린다든지 권력을 뽐낸다든지 하려고 배우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국땅에서 한겨레붙이끼리 영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려고 영어를 배우겠습니까. 배운 티를 내거나 배운 자랑을 할 마음으로 영어나 한자를 배우는지요. 한자를 배워서 한자사랑을 하는 지식인들 글을 읽어야 하거나, 영어를 배워서 영어사랑을 하는 권력자들 글을 새겨야 하는지요.

 

즐거우며 아름답게 살고자 말을 배웁니다. 이 나라 이 땅 수수한 여느 이웃하고 사랑을 나누고 믿음을 함께하고자 말을 배웁니다. 이웃나라 이웃 겨레하고 좋은 생각과 너른 넋과 따순 얼을 주고받고자 바깥말을 익힙니다. 한자이든 영어이든 또다른 바깥말이든 우리 스스로 더욱 넓은 품이 되면서 한결 깊은 속이 되고자 꿈꾸면서 배울 말이며 글입니다.

 

우리는 우리 말로 생각하고 우리 말로 사랑하며 우리 말로 살아갈 노릇입니다. 껍데기 우리 말이 아닌 알맹이 우리 말을 생각하고 사랑하며 살아낼 노릇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고사성어, #상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