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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자전적 소설

.. 밀러의 자전적 소설의 핵심을 찌른 신화 중의 하나인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항상 저자 자신의 분신인데 ..  <케이트 밀레트/정의숙,조정호 옮김-성의 정치학 (상)>(현대사상사,1976) 14쪽

"소설의 핵심(核心)을 찌른"은 그대로 둘 수 있겠지요. "소설 한복판을 찌른"으로 손보면 어쩐지 안 어울릴 수 있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날카롭게 찌른"이나 "소설을 제대로 찌른"이나 "소설을 제대로 파헤친"으로 손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신화 중(中)의 하나"는 "신화 가운데 하나"로 다듬고, "이 소설의 주인공(主人公)"은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으로 다듬습니다. '항상(恒常)'은 '늘'이나 '한결같이'로 손질하고, "저자(著者) 자신의 분신(分身)"은 "지은이 자신인데"나 "글쓴이를 가리키는데"나 "지은이를 나타내는 또다른 모습인데"나 "글쓴이 모습으로 나오는데"로 손질해 봅니다.

그런데 이래저래 이 보기글을 손질하고 손보지만 글 짜임새가 영 어설픕니다. 처음 우리 말로 옮길 때부터 옳게 옮기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낱말을 하나하나 다듬는다고 하더라도 영어로 된 글에서 어떤 이야기를 다루거나 나누려고 했는가를 옳게 갈무리하기는 어렵다고 느낍니다.

 ┌ 자전적(自傳的) : 자서전의 성질을 띠고 있는
 │   - 자전적 소설 / 자전적인 이야기
 ├ 자전(自傳) = 자서전
 ├ 자서전(自敍傳) : 작자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스스로 짓거나, 남에게 구술하여 쓰게 한 전기
 ├ 전기(傳記) : 한 사람의 일생 동안의 행적을 적은 기록
 │
 ├ 밀러의 자전적 소설
 │→ 밀러한테 자서전 같은 소설
 │→ 밀러가 당신 삶을 담은 소설
 │→ 밀러 스스로 당신 삶을 돌아본 듯한 소설
 │→ 밀러가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소설
 │→ 밀러가 제 삶을 오롯이 담은 소설
 └ …

"자전적 소설"이라는 말은 자주 쓰입니다. "자전적 시"나 "자전적 수필" 같은 말마디는 잘 안 쓰이지 않느냐 싶지만, 제가 몰라서 그렇지 "자전전 연극"이나 "자전적 영화"라는 말마디도 널리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전적 노래"라든지 "자전적 연기" 같은 말마디를 쓰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자전적 소설 → 자서전 같은 소설
 └ 자전적인 이야기 → 자서전 같은 이야기

'자서전 성질을 띤다'는 '자전적'이라고 합니다. 자서전이면 자서전이지, 무슨 자서전 성질일까 싶은 국어사전 뜻풀이인데, 자서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살펴보니, '자기 이야기를 쓴 전기'라고 하는군요. 다시 '전기'라는 말을 찾아봅니다. 한 사람 삶을 죽 적은 글이 '전기'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서전'과 '전기' 말풀이가 뒤죽박죽이 되는데 …….

 ┌ 자서전 같은 소설 → 자기 삶을 쓴 소설
 └ 자서전 같은 이야기 → 자기 삶 같은 이야기

소설이든 시이든 다른 어떤 문학이든, 내 이야기를 내 손으로 씁니다. 또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찬찬히 살피거나 귀기울여 듣고 나서 씁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거나 보고서 썼다면 '이웃 삶을 담아낸 소설'입니다. 내 이야기를 나 스스로 돌아보거나 곰곰이 되씹으면서 썼다면 '내 삶을 담아낸 소설'입니다. 굳이 한자말로 가리키고자 한다면 "자전 소설"이라고 하면 됩니다. "자서전 소설"이라 해도 되겠지요.

어줍잖게 말치레를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괜시레 말껍데기만 들씌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어설피 말옷만 두툼히 입히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구지레하게 말장난을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내 이야기를 쓰"고, 밀러라는 분은 "밀러 당신 이야기를 씁"니다. "내가 내 삶을 소설로 옮기"고, 밀러나는 분은 "밀러 당신 삶을 소설로 옮깁"니다.

ㄴ. 유미리의 자전적 에세이

.. 이 책은 작년,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여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  <유미리/김난주 옮김-물가의 요람>(고려원,1998) 251쪽

'작년(昨年)'은 '지난해'로 다듬습니다. "일본 최고(最高)의 문학상인"은 "일본에서 최고로 치는 문학상인"이나 "일본에서 첫손 꼽는 문학상인"이나 "일본에서 으뜸으로 치는 문학상인"이나 "일본에서 가장 손꼽히는 문학상인"으로 손봅니다.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受賞)하여"는 "아쿠타가와 상을 받아"로 손질하고, "일본에서는 물론(勿論)이고"는 "일본을 비롯해서"나 "일본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로 손질하며, "국내(國內)에서도 큰 화제(話題)를 불러일으킨"은 "나라안에서도 크게 이야기가 된"이나 "나라안에서도 큰 이야깃거리를 불러일으킨"으로 손질합니다. '에세이(essay)'는 '수필'이나 '글'로 고쳐씁니다.

 ┌ 유미리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
 │→ 유미리가 살아온 이야기이다
 │→ 유미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적은 글을 묶었다
 │→ 유미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 유미리가 제 삶을 적은 이야기이다
 └ …

수필이든 소설이든 시이든 희곡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나 스스로 살아간 이야기인지 다른 사람이 살아간 이야기인지 머리속으로만 헤아려 본 살아간 이야기인지가 다릅니다.

나라에서 마련한 고쳐쓸 낱말로는 '누리신문'이지만 우리는 으레 그냥 '인터넷신문'이라고 하는데, 누리신문인 <오마이뉴스>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사는 이야기"라는 꼭지를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다른 매체나 잡지에서는 "생활글"이나 "생활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였음직한 꼭지인데, 말 그대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꼭지이기에 "사는 이야기"입니다.

"사는 이야기" 꼭지에 실린 글을 들여다보면, 이 자리에 글을 쓰는 분들은 하나같이 나 스스로 살아온 이야기나 살아갈 이야기를 글로 적바림합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쓰기도 하지만, 곰곰이 따지고 보면 모두모두 "내 삶 이야기"입니다. 이른바 "자전적 수필"이라고 할 만한 글입니다.

 ┌ 유미리가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다
 ├ 유미리가 보내온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 유미리가 살았던 나날이 담겨 있다
 └ …

보기글에서는 "자전적 수필"조차 아닌 "자전적 에세이"라고 적었습니다만, '자전'이나 '자서전'이라는 말마디를 넘어 아예 새롭게 말마디를 빚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누리신문에서는 "사는 이야기"라는 낱말을 새롭게 썼다면, 이와 같은 "자전적 수필"이나 "자전적 에세이" 같은 문학 갈래에서는 "삶이야기"처럼 새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종이에 적바림하는 글이 될 때에는 '삶글'입니다. 입으로 주고받는 말이 될 때에는 '삶말'이 됩니다. 글과 말을 아우르면서 가리키고자 한다면 '삶이야기'입니다.

좀더 또렷하게 나타내고자 한다면 '내삶글'이라 할 수 있고 '남삶글'로 나눌 수 있겠지요.

이처럼 빚는 새말이 그리 어울리지 않다고 느끼거나 맞갖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내 삶 글'이나 '이웃 삶 글'처럼 하나하나 띄어서 적을 수 있습니다. 굳이 한 낱말로만 적으란 법이 없으니까요. 우리한테는 우리 나름대로 가장 알맞고 싱그럽게 나타내며 주고받을 말마디가 있으면 좋으니까요.

 ┌ 삶이야기
 ├ 삶글
 ├ 삶말
 └ …

가만히 곱씹어 보면, 내 삶이나 이웃 삶을 두루 헤아리면서 마련하는 깊은생각이라고 하는 '생활철학'이란 다름아닌 '삶생각'입니다. 또는 '삶넋'이나 '삶얼'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하는 일이란 바로 '삶일'입니다. 살아가는 가운데 너나없이 즐기는 놀이라 할 때에는 '삶놀이'입니다. 서로서로 삶을 사랑하고 아끼는 동무라 한다면 '삶벗'이나 '삶동무'라 할 수 있겠지요. 알차게 꾸리고 싶은 내 살림살이를 꿈꾼다면 '삶꿈'입니다. 삶을 가르치는 학교일 때에는 '삶학교'나 '삶배움터'입니다. 삶을 다루는 책은 '삶책'이고, 삶을 노래한다면 '삶노래'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믿거나 보듬는 만큼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믿거나 보듬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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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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