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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람들의 노력

.. 다행히도 잠금쇠는 계속 열리지 않았고, 사람들의 노력은 헛수고였다 ..  <리지아 누네스/길우경 옮김-노랑 가방>(민음사,1991) 98쪽

'다행(多幸)히도'는 '고맙게도'로 다듬고, '계속'은 '끝내'나 '그예'로 다듬어 줍니다. '노력(努力)은'은 '애써도'나 '힘을 써도'나 '용을 써도'나 '재주를 부리나'로 손질합니다.

 ┌ 노력(努力) :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
 │   - 노력을 기울이다 / 노력을 쏟다 / 각고의 노력 끝에 /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 사람들의 노력은 헛수고였다
 │→ 사람들이 애를 써도 헛수고였다
 │→ 사람들이 용을 쓰지만 헛수고였다
 │→ 사람들은 헛수고를 했다
 │→ 사람들은 애를 쓰나 마나였다
 └ …

이 자리에서는 한자말 '노력'과 말짜임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사람들 노력은 헛수고였다"로 손보아도 괜찮습니다. 말짜임만 살짝 손질해서 "사람들이 노력해도 헛수고였다"로 고쳐써도 괜찮고요. 살을 살며시 붙이면서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라든지 "사람들이 노력해 보아도 헛수고였다"처럼 고쳐써도 잘 어울립니다.

이렇게 해 본 다음에 한 번쯤이나마 국어사전을 뒤적여 한자말 '노력'이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익히 쓰는 말마디이니 굳이 국어사전을 안 찾아보아도 된다고 여기지 말고, 처음 영어를 배울 때에 모든 낱말을 하나하나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며 새롭게 익히듯, 우리들이 어른이 된 뒤라 하더라도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낱말을 하나하나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서 말뜻을 살피고 말느낌을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한자말 '노력'은 '애씀'을 뜻합니다. '노력하다'는 '애쓰다'를 뜻합니다. 딱히 다른 뜻이 깃든 '노력'이 아닙니다. 한자로 적으니 '노력'이요, 우리 말로 적으니 '애씀'입니다.

이리하여, 이 보기글은 "애를 쓰나 마나"나 "애를 써도 헛수고"나 "애를 써도 보람이 없"다거나 "애를 쓰지만 부질없"는 노릇이라고 다듬어도 됩니다. 같은 뜻으로 '힘쓰다'를 넣을 수 있습니다. 느낌을 살려 '용쓰다'를 넣어도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갖은 재주를 부려도"라 해 보거나 "사람들이 젖먹던 힘을 내어 보아도"라 해도 잘 어울립니다. 똑같이 애를 쓰거나 용을 쓰거나 힘을 쓴다고 할지라도 사람마다 모양새와 매무새가 다를 터이니, 다른 모양새와 매무새를 잘 살피어 말그릇에 담아 주면 되지요.

 ┌ 노력을 기울이다 → 힘을 기울이다 / 애쓰다
 ├ 노력을 쏟다 → 힘을 쏟다 / 온힘을 쏟다
 ├ 각고의 노력 끝에 → 뼈를 깎듯 애쓴 끝에
 └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 바지런히 애썼지만

우리는 우리 말을 좀더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이웃하고 우리 말로 우리 생각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좀더 알차게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글을 좀더 잘 새겨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동무하고 우리 글로 우리 느낌을 나누는 자리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 글을 한결 싱그럽게 갈고닦아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살림을 꾸리는 데에도 애써야겠고, 좋고 곱고 빛나는 넋을 돌보는 데에도 힘써야겠으며, 알차고 해맑은 말을 일구는 데에도 마음을 써야겠습니다.

ㄴ. 20년 동안의 노력이 필요

.. 그런 강을 만들기 위해 지난 20년 동안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  <데이비드 스즈키,오이와 게이보/이한중 옮김-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나무와숲,2004) 319쪽

"만들기 위(爲)해"는 "만들려고"나 "만들어 내려고"로 다듬고, '필요(必要)했습니다'는 '있어야 했습니다'나 '들어야 했습니다'나 '바쳐야 했습니다'로 다듬어 줍니다.

 ┌ 20년 동안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
 │→ 20년이 필요했습니다
 │→ 스무 해가 걸렸습니다
 │→ 스무 해를 보내야 했습니다
 │→ 스무 해 동안 애써야 했습니다
 │→ 스무 해에 걸쳐 힘써야 했습니다
 └ …

죽은 물줄기를 되살리기란 참 힘듭니다. 처음부터 물줄기가 죽지 않도록 잘 다스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경제개발이라든지 더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마음을 앞세우면서 물줄기를 더럽힙니다. 멧줄기를 어지럽히거나 끊어 놓습니다. 논밭을 뒤집어 높은 건물을 세웁니다. 한참 나중에 우리 몸이 나빠지고 우리 마실 물과 바람이 지저분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더럽힌 삶자락을 예전으로 되돌리겠다고 다시금 돈을 들입니다. 모두가 돈 때문에 무너지고 모두가 돈으로 살릴 수 있다는 듯 잘못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런 마음 그대로 우리 말을 무너뜨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북돋운다며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습니다. 학교마다 큰돈을 들여 영어교실을 마련하고 영어 강사를 나라밖에서 데려옵니다. 이러는 동안 정작 아이들이 착하고 맑은 마음을 추스르도록 도울 좋은 교사를 기르는 일이나 좋은 책을 갖추는 일에는 젬병입니다.

알맞고 슬기롭고 바르게 말을 하고 글을 쓰도록 이끄는 제도나 정책이란 없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태어날 때부터 '우리 말은 알아서 잘하는 줄' 여기고 있습니다. 영어이든 한자이든 일본말이든 무어든 '살아가며 꾸준히 써야 솜씨가 느는 줄'을 알면서, '살아가면서 우리 말글을 올바르고 슬기롭게 꾸준히 주고받는 길'은 마련하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모든 자리에 영어를 써서 영어에 익숙한 지식인'을 키우는 데에만 힘을 쏟습니다.

 ┌ 스무 해 동안 힘껏 일해야 했습니다
 ├ 스무 해 동안 땀흘려야 했습니다
 ├ 스무 해에 걸쳐 바지런히 땀흘려야 했습니다
 ├ 스무 해에 걸쳐 온힘을 쏟아야 했습니다
 └ …

죽은 물줄기를 되살리느라 스무 해 동안 온힘을 바친다고 하지만, 애써 스무 해를 땀흘렸어도 물줄기가 다시 죽는 데에는 고작 하루면 넉넉합니다. 물줄기에 수은을 뿌린다든지 공장 쓰레기물이 흘러든다든지 원자력발전소 열폐수가 쏟아지면 그예 도루묵입니다. 돌보고 지키고 건사하기란 몹시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꾸준히 보살피고 아끼는 버릇을 들여 놓으면 날마다 흐뭇하고 홀가분하게 사랑하며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어를 배우든 한자를 익히든 학문이라는 생각으로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이러면서 다른 한 자리에서는 우리 삶을 일구는 우리 말과 글을 옳고 바르게 가다듬어야 합니다. 우리 말은 우리 말대로 우리 삶을 알차게 보듬는 손길로 돌아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 글은 우리 글대로 우리 넋을 싱그럽게 담아내는 눈길로 살피면서 익혀야 합니다.

어릴 때에는 어릴 때대로 익히는 틀이 있고, 젊을 때에는 젊을 때대로 보듬는 틀이 있으며, 나이든 때에는 나이든 때대로 살피는 틀이 있습니다. 아이들만 배우는 말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함께 배울 말입니다. 아이들한테 말을 가르치려면 어른들부터 어떤 말을 어떻게 보여주며 가르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교과서나 책으로 가르치는 말이 아닌, 어른 스스로 삶을 꾸리는 모양새 그대로 물려주며 가르치는 말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저절로 길들도록 하는 말이요, 어른들끼리 아무 생각없이 주고받는 동안 시나브로 젖어들도록 하는 말입니다. 욕지꺼리를 즐기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욕지꺼리를 물려주고, 사랑 담은 말을 즐거이 나누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사랑 담은 말을 즐거이 물려줍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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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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