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리읽기 - 글쓴이가 드리는 말
[우리 말에 마음쓰기] ['-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적' 없애야 말 된다], 이 세 흐름에 따라서 쓰는 '우리 말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는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생각을 열'고 '우리 마음을 쏟'아,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한 동아리로 가다듬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라서 나쁘다'거나 '영어는 몰아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걸림돌이나 가시울타리 가운데에는 '얄궂은 한자'와 '군더더기 영어'가 꽤나 넓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쓸 만한 말이라면 한자이든 영어이든 가릴 까닭이 없고, '우리 말'이란 토박이말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쓸 만한지 쓸 만하지 않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한자와 영어를 아무렇게나 쓰고 있습니다. 제대로 우리 말마디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말과 생각과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라는 꼭지이름처럼, 아무쪼록 '우리 말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생각과 삶에 마음을 쓰는 이야기로 이 연재기사를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생리화되다

 

.. 지난날 그들의 국민 우롱은 군부독재가 계속되는 동안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할 수 있었다. 그 오랜 습성은 생리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리영희-스핑크스의 코》(까치,1998) 138쪽

 

 "그들의 국민 우롱(愚弄)"은 "그들이 벌인 국민 우롱"이나 "그들이 사람들을 갖고 논 짓거리"나 "그들이 사람을 괴롭히는 짓"으로 다듬어 줍니다. '계속(繼續)되는'은 '이어지는'으로 손보고, "보호(保護)를 받았기"는 "보살핌을 받았기"로 손보며, '안심(安心)할'은 '마음놓을'이나 '걱정없을'로 손봅니다. '습성(習性)'은 '버릇'으로 손질합니다.

 

 ┌ 생리화 : x

 ├ 생리(生理)

 │  (1) 생물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

 │   - 한 발의 탄환이면 쓰러져 버리는 육체의 생리로서 무슨 초인이냐 말이다

 │  (2) 생활하는 습성이나 본능

 │   - 생리에 맞다 / 그들의 한결같은 생리라는 것

 │

 ├ 오랜 습성은 생리화되었다고

 │→ 오랜 버릇이 굳어졌다고

 │→ 오랜 버릇은 뿌리를 내렸다고

 │→ 오랜 버릇은 그대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 …

 

 다른 '-化'붙이 말투와 마찬가지로, '생리화'란 '생리가 되다'를 가리킵니다. 한자말 '생리'를 반드시 써야겠다는 마음이라면 이 말마디는 그대로 두되, '생리가 되다'처럼 적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한자말 '생리'를 좋아하는 분들은 우리 말 '되다'를 뒤에 달지 않습니다. 그나마 토라도 토박이말로 달아 주려는 마음이 없이 그예 '-化'를 붙이고 맙니다.

 

 ┌ 생리화 = 생리가 되다

 ├ 생리 = 습성

 ├ 습성 = 습관

 ├ 습관 = 버릇

 │

 └ 생리화 → 버릇이 되다

 

 국어사전에 '생리화'는 따로 안 실립니다. '생리' 말뜻을 헤아리며 '생리화' 쓰임새를 살핍니다. 사람들이 익히 쓰는 '생리화'라 한다면 "(2) 생활하는 습성이나 본능"을 가리킬 테고, 이 말풀이에 나오는 '습성(習性)'을 다시금 국어사전에서 뒤적이면, "습관이 되어 버린 성질"이라는 뜻풀이가 달립니다. 또 한 번 국어사전에서 '습관(習慣)'을 찾아봅니다.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라는 뜻풀이가 달립니다. 이 말풀이를 어디에선가 본 듯하여, '버릇'이라는 토박이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오랫동안 자꾸 반복하여 몸에 익어 버린 행동"이라는 뜻풀이가 달립니다.

 

 ┌ 습관 :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 버릇 : 오랫동안 자꾸 반복하여 몸에 익어 버린 행동

 

 두 낱말 뜻풀이는 다른 뜻풀이일는지, 같은 뜻풀이일는지 궁금합니다. 한자말 '습관'을 풀이할 때에는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라 나오고, 토박이말 '버릇'을 풀이할 때에는 "오랫동안 자꾸 반복하여"라 나옵니다.

 

 한자말 풀이에서는 토박이말 '되풀이하는'을 넣고, 토박이말 풀이에서는 한자말 '반복'을 넣습니다. 한자말 풀이에서는 '과정에서'라 넣으며, 토박이말 풀이에서는 '-하여' 한 마디로 끝맺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두 낱말풀이는 똑같습니다. 똑같은 풀이를 낱말 몇 가지 살짝 바꾸어 넣었을 뿐입니다. 하나는 "저절로 익혀진"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몸에 익어 버린"이라 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로서는 예부터 '버릇' 한 마디로 넉넉히 말을 나누고 글을 나눌 수 있은 셈이지만, 이 말마디를 가리키는 한자말 '습관'을 함께 받아들여 쓰고 있었다는 셈입니다. 오늘날도 그러합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듯합니다.

 

 "물위에 뜨다"라 하면 넉넉하지만, 굳이 "수면에 부상하다"라 말하려는 이 나라 사람들입니다. "십이 쪽을 보셔요"라 하면 넉넉해도, 구태여 "십이 페이지를 보셔요"라 말하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입니다. "얼른 타셔요"라 하면 그만이나, "얼른 차에 승차하셔요"라 해 버리는 이 나라 사람들입니다. "잘 가" 하고 손을 흔들면 넉넉한데, "바이바이"나 "안녕"이라 하며 손을 흔드는 이 나라 사람들이에요.

 

 ┌ 생리에 맞다 → 몸에 맞다

 └ 그들의 한결같은 생리라는 것 → 그네들 한결같은 버릇이라는 소리

 

 흔히 '다양성'이라는 이야기를 내세워 토박이말과 한자말과 영어로 '한 가지 일'을 가리키는 일을 감싸고 있습니다. 여기에 '개성과 자유와 권리'라는 이야기를 앞세워 중국한자말을 쓰든 일본한자말을 쓰든, 또 미국말이든 영국말이든 프랑스말이든, 쓰고픈 사람 내키는 대로 쓰면 된다고 둘러대고 있습니다.

 

 '마른 고사리'나 '말린 버섯'이라 안 하고 '건(乾) 고사리'나 '건 버섯'이라고 하니까, 또 '마른 오징어'라 안 하고 '건 오징어'라고까지 하니까, 게다가 '산 오징어'가 아니라 '생(生) 오징어'라고들 하니까,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빈병과 헌옷을 모은다고 하면서도, 꼭 '모으는 통'이나 '모음통'이 아닌 '수거함(收去函)'이라고만 하니까, 아무래도 다스릴 길이 없다고 느낍니다.

 

 ┌ 오래도록 버릇으로 굳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 오랫동안 버릇이 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 오랜 나날에 걸쳐 버릇이 되어 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

 └ …

 

 보기글을 거듭 살펴봅니다. 보기글을 들여다보면 "습성은 생리화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다시 들춰봅니다. 국어사전 뜻풀이를 들춰보면 "생리 (2) = 습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보기글은 "버릇은 버릇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셈입니다. 같은 뜻 같은 소리 같은 말임을 깨닫지 못하고 얄궂게 겹말까지 쓰고 있는 판입니다.

 

 이런 글을 다른 분도 아닌 우리 삶터 훌륭한 지성 가운데 하나로 손꼽는 리영희 님이 썼다니 무척 놀랄 일이며, 안타깝기까지 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글을 리영희 님 책을 펴낸 출판사 일꾼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리영희 님 글을 읽는 우리 가운데 옳게 깨달은 사람 또한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아무도 없을는지 모릅니다.

 

 꼭 더 나은 쪽으로 다듬는다고는 느끼지 않으나, 성경말은 해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새로워지고 달라집니다. 그때그때 '더 옳고 바르게' 풀어내려고 애씁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든 안 읽든 성경을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성경말을 가다듬거나 추스르는 매무새는 찬찬히 돌아보거나 톺아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하나로 굳어진 말이란 없으니까요. 꼭 하나로 끝나는 말이란 없으니까요.

 

 사람에 따라 달리 쓰는 말입니다만, 달리 쓰는 말이라 해서 함부로 써도 되는 말이지는 않습니다. 때에 따라 다르게 쓰는 말입니다만, 다르게 쓰는 말이라 해서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말이지는 않습니다. 옳은 길이 있고 바른 길이 있습니다. 알맞는 길이 있으며 아름다운 길이 있습니다.

 

 책에 적힌 글이든, 입으로 주고받는 말이든,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이든, 우리 깜냥껏 우리 슬기를 빛내어 하나하나 돌보고 다스려 낼 수 있는 우리 삶으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좋아하거나 섬기는 분 글줄이나 말마디라고 한다면, 더욱 깊고 너르게 살피고 곱씹으면서 좋고 궂음과 넘침과 모자람까지 두루 읽어내고 삭여낼 수 있어야지 않나 생각합니다.

 

 옳은 버릇을 들이고, 맑은 버릇으로 가다듬습니다. 바른 버릇을 받아들이고 따뜻한 버릇으로 추스릅니다. 내 말과, 내 생각과, 내 삶 모두를 다 함께.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화, #화化,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