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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읽기 - 글쓴이가 드리는 말
[우리 말에 마음쓰기] ['-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적' 없애야 말 된다], 이 세 흐름에 따라서 쓰는 '우리 말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는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생각을 열'고 '우리 마음을 쏟'아,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한 동아리로 가다듬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라서 나쁘다'거나 '영어는 몰아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걸림돌이나 가시울타리 가운데에는 '얄궂은 한자'와 '군더더기 영어'가 꽤나 넓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쓸 만한 말이라면 한자이든 영어이든 가릴 까닭이 없고, '우리 말'이란 토박이말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쓸 만한지 쓸 만하지 않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한자와 영어를 아무렇게나 쓰고 있습니다. 제대로 우리 말마디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말과 생각과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라는 꼭지이름처럼, 아무쪼록 '우리 말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생각과 삶에 마음을 쓰는 이야기로 이 연재기사를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ㄱ. 회사의 일이 바쁠 때

 

.. 회사의 일이 바쁠 때는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을 해야 했다 ..  《외국인노동자대책 협의회-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백서》(다산글방,2001) 22쪽

 

 "회사의 일"이라고 적은 대목이 아쉽습니다. "바쁠 때는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을 해야"는 잘 썼지만. 이 자리에는 '시기(時期)'도 '출근(出勤)'도 '작업(作業)'도 말하지 않거든요.

 

 ┌ 회사의 일이 바쁠 때

 │

 │→ 회사일이 바쁠 때

 │→ 회사가 바쁠 때

 │→ 회사에서 할 일이 많을 때

 │→ 회사에 일이 많으면

 └ …

 

 보기글에서는 토씨 '-의'만 덜어 "회사일이 바쁠 때"처럼 적으면 됩니다. '일'이라는 말까지 덜어서 "회사가 바쁠 때"로 적어도 됩니다. "회사에서 할 일이 많을 때"라고 해도 잘 어울리고, "회사에 일이 많으면"이라 해도 퍽 괜찮습니다.

 

 ┌ 회사에서 일하느라 바쁠 때

 ├ 회사에서 일에 매여 바쁠 때

 ├ 회사에 일에 넘쳐 바쁠 때

 ├ 회사에 일이 끊이지 않아 바쁠 때

 └ …

 

 그리고, '일이 어떻게 많'고,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일이 넘치기에 바쁘면, "회사일이 넘쳐 바쁠 때"라 하면 되고, 회사에 끊이지 않는 일에 매여야 하기 때문에 바쁘다 할 때에는, "회사에서 일에 매여 바쁠 때"라 하면 돼요.

 

 흐름을 살리고 느낌을 살핍니다. 때와 곳을 돌아보고 모습과 삶을 차근차근 헤아립니다.

 

ㄴ. 성장의 양식

 

.. 젊을 때야 물만 마셔도 한 뼘씩 자랄 때이므로 무엇을 읽든 간에 모두 성장의 양식이 된다 ..  《가와이 에이지로/이은미 옮김-대학인,그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유원,2003) 23쪽

 

 "무엇을 읽든 간(間)에"는 "무엇을 읽든지"나 "무엇을 읽더라도"로 다듬어 줍니다. '양식(糧食)'은 '밥'으로 손질합니다.

 

 ┌ 성장의 양식이 된다

 │

 │→ 성장하는 밥이 된다

 │→ 자라나는(자라는) 밥이 된다

 │→ 자랄 수 있도록 밥이 된다

 └ …

 

 '성장(成長)의 양식'이라 했는데, 여기서는 '성장하는 양식'쯤으로는 고쳐 주어야 알맞습니다. 다음으로 한자말 '양식'은 '밥'으로 다듬을 수 있고, 또다른 한자말 '성장'은 '자라다'나 '자라나다'로 다듬으면 됩니다.

 

 이리하여 "자라나는 밥"이라든지 "자라도록 돕는 밥"으로 풀어낼 수 있어요. 책을 놓고 "자라나는 밥"이라 가리킨다면 어딘가 안 어울린다고 여길 분이 있을지 모르는데, 한자말로 "성장하는 양식"이라고 가리킬 때에는 잘 어울린다고 여기는가요? 한자말로 적으면 괜찮고, 우리 말로 적으면 영 엉뚱하거나 걸맞지 않다고 느끼는가요?

 

 하기는. 우리들은 책을 일컬어 "마음의 양식"이나 "정신의 양식"이라고만 말할 뿐, "마음밥"이나 "생각밥"이나 "넋밥"처럼 말하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ㄷ. 라이조의 웃는 얼굴

 

..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오시마 라이조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오자와 마리/서수진 옮김-PONG PONG (1)》(대원씨아이,2008) 31쪽

 

 "사실(事實)대로 말하자면"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털어놓고 말하자면"이나 "내 속뜻을 말하자면"이나 "내 속마음을 말하자면"으로 다듬어도 괜찮습니다.

 

 ┌ 라이조의 웃는 얼굴을 (x)

 └ 라이조가 웃는 얼굴을 (o)

 

 일본책 때문이라고도 하고, 영어책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그 어느 탓을 하기란 어렵습니다. 아무리 나라밖 말에 짓궂게 스며들거나 끼어들려 한달지라도, 우리 스스로 우리 매무새를 다스리고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어요. 제아무리 힘세고 우락부락한 바깥말이 쳐들어온다 할지라도, 우리 누구나 우리 마음가짐을 알뜰히 추스르고 있다면 어떠한 근심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습은 어떻습니까. 무시무시하게 우리 말과 글을 짓밟은 일본말이 있기도 했지만, 일본말이 물러간 다음에도 우리 스스로 일본말을 털어내지 않았습니다. 외려 숨가쁘게 미국말을 받아들이기만 했습니다. 우리 모습을 찾으려고는 발버둥이나 몸부림도 제대로 치지 않는 가운데 또다른 바깥말로 우리 삶자락이 엉망으로 망가지도록 짓이겼습니다.

 

 ┌ 라이조가 활짝 웃는 얼굴을

 ├ 라이조가 빙긋 웃는 얼굴을

 ├ 라이조가 환하게 웃는 얼굴을

 ├ 라이조가 해맑게 웃는 얼굴을

 ├ 라이조가 즐겁게 웃는 얼굴을

 ├ 라이조가 싱그럽게 웃는 얼굴을

 └ …

 

 바르게 말하지 않으면서도 바르게 말하지 않는 줄 느끼지 않습니다. 바르게 말하지 않았다고 누군가 알려주어도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고치지 않고 손질하지 않습니다. 매만지지 않고 보듬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말과 글뿐만이 아닙니다. 잘못된 생각, 비뚤어진 생각, 치우친 생각을 버리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 우리 못난 모습을 바로잡지 않아요. 돈에 따라 푸대접하고 성별에 따라 가르며 몸매와 얼굴에 따라 금을 긋는 철없는 모습을 고치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삶이 뒤죽박죽이라고 할까요. 아니, 우리 삶이 제자리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고 할까요. 한 사람이 한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목숨을 고이 빛내고 있다면, 말이든 생각이든 매무새든 삶이든 아름다움을 환하게 뽐냅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한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목숨을 느끼지 않거나 깨닫지 않는다면, 제 마음속에 깃든 빛줄기를 그예 잠들어 버리게만 할 뿐 일으켜세우거나 깨우지 못하고 말아요. 스스로 바보가 됩니다. 스스로 멍청이가 됩니다. 스스로 철부지가 됩니다.

 

 바보스럽게도 바보스러운 정치꾼한테 표를 주고, 멍청하게도 멍청한 막개발이 돈을 부르는 줄 생각하며, 철딱서니없게도 철딱서니없는 말과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뇌까립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토씨 ‘-의’, #-의 ,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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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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