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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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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내리기 직전의 달내마을 모습
ⓒ 정판수
비가 내립니다.
달내 마을에 꿀비가 내립니다.
반 년 만에 들리는 낙숫물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홈통을 타고 내려오는 소리가 무한중주(無限重奏)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듯합니다.

큰 홈통을 타고 내리는 소리는 크르르릉 크르르릉 …
중간 홈통을 타고 내리는 소리는 그르르르 그르르르 …
작은 홈통을 타고 내리는 소리는 기리리링 기리리링 …
잎사귀를 굴러 내리는 소리는 또르르르 또르르르 …

떨어져 흘러가는 소리도 다릅니다.
쭈르르르 쭈르르르 … 쪼르르르 쪼르르르 … 조리리리 조리리리 …
상춧잎에 내리는 비, 뽕나무에 내리는 비, 지붕 위에 내리는 비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다 다르지만 아름답습니다.

소리가 아름다운 건 그만큼 고맙기 때문이겠지요.
이웃 늘밭마을 논에 심은 모가 타들어가고 있다는 소식에,
우리 마을 뒤 머든마을 밭작물이 내뱉는 신음 소리에,
뽕나무에 매달린 오디가 검은 빛을 잃고 누렇게 되는 안타까움에,
한 달음에 달려온 듯 고마운 꿀비가 내립니다.

▲ 비 살짝 걷힌 뒤 달내마을 모습
ⓒ 정판수
도시에선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가뭄이 심하다 해도 멀리 떨어진 이들의 얘기,
논과 밭이 탄다고 해도 나와 관계없는 얘기,
수확량이 적다는 뉴스에 좀 비싸게 사먹으면 어때?
그저 지나가는 남의 얘기였습니다.

오늘 아침 비가 살짝 비껴드는 테라스에 앉아 있음에
달내계곡을 따라 물안개가 서서히 번져 오르고,
이어 가슴 깊이 차오르는 따스함에 슬그머니 미소 짓습니다.
이렇게 한가로운 마음을 참 얼마 만에 갖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달내마을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된장집 마당에 즐비한 장독 위에도
산음댁 할머니네 방울이(개 이름) 콧등에도
한국댁 할아버지 갈아놓은 콩밭에도
우정씨 아버님 묏등을 덮은 엉겅퀴에도
보랏빛을 드러내기 직전인 도라지꽃에도
가뭄으로 바닥을 다 드러낸 산수도(山水道) 물탱크에도

비가 내립니다.
달내마을에 꿀비님이 내리고 계십니다.

덧붙이는 글 | 다른 곳에는 비가 좀 왔는가 본데 우리 마을 주변에는 반 년 동안 거의 오지 않아 애먹었는데,  정말 오랜 만에 내리는 꿀비에 어찌나 고마운지 ... 몇 자 긁적거려 보았습니다.


태그:#달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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