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03 06:52최종 업데이트 24.07.03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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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에서 상법 개정 등 이슈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보공개청구 대상 공공기관이라면 모두가 공개하는 정보가 있다. 바로 기관장의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이다.  

1998년 정보공개법 개정 이후 시민사회에서 공공기관에 가장 먼저 요청한 정보는 세금으로 이뤄진 기관장의 '법인카드' 내역을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2000년대 초반 업무추진비(판공비) 공개 운동은 법정 소송으로 이어졌고 모두 공개 판결을 받았다.


많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뿐 아니라 공기업, 사립대학에 이르기까지 이제 업무추진비는 사적으로 유용할 수 없도록 필수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정보가 되었고, 업무추진비와 관련한 부정부패는 상당 부분 근절되었다. 

하지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정보공개법상 공공기관에 해당하면서도, 가장 기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는 기관이 여전히 존재한다. 금융감독원(아래 금감원)이 대표적인 예다. 
     
금감원 홈페이지 사전공표목록에 공개된 금감원장 업무 추진비 집행내역을 살펴보면, 1년에 한 번 결산이 끝난 후 지난 연도의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한다. 예산 사용 내역을 연도별로 한 번씩 공개한다면 기관장이 현시점에 어떻게 돈을 쓰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고 부정이 있어도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된다.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매월 사장의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하고, 금감원이 소속되어 있는 금융위원회(아래 금융위)도 적어도 분기별로 내역을 공개한다. 심지어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만한 정보는 모조리 비공개로 일관하는 윤석열 대통령실조차도 업무추진비는 분기별로 공개한다.
 

2023년 금감원장 업무추진비 집행내역 금감원은 업무추진비 내역을 간담회, 업무협의, 경조사비로 나눠 월별 건수와 금액 통계만을 공개하고 있다. ⓒ 금융감독원


더 심각한 것은 '공개의 내용'이다. 금감원은 업무추진비 내역을 간담회, 업무협의, 경조사비로 나눠 월별 건수와 금액 통계만을 공개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정보는 한 달에 250만 원 정도를 썼다는 것과 용도별로 건당 평균 얼마를 지출했는지 정도 뿐이다.

공금 사용이 적절한 용도로 적절한 시간에 지출됐는지, 해당 건에 맞는 적절한 금액을 쓴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업무추진비를 낭비하거나 유용하고 있지 않은지 검증을 받으려면 건별로 집행 목적과 장소, 대상, 인원이 포함되어야 하지만, 다른 공공기관에서는 기본으로 지키는 규정들이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다.

사전에 공개하는 정보는 기관의 재량에 따라 공개 수준에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정보공개센터는 업무추진비의 세부 집행내역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원장의 업무추진비 세부 정보를 공개할 경우 ▲ 국민의 생명 및 재산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고 ▲ 업무의 공정성을 훼손하며 ▲ 경영, 영업상의 비밀에 해당하여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고 ▲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가 크다는 다종다양한 근거를 들어 상세내역을 비공개했다. 
         
또한 금감원은 비공개 통지를 하며 사전 공개한 자료가 금융위 규정인 '금융감독원의 경영공시에 관한 기준'에 따라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이미 집행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한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경영공시는 기관이 건전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미리 공시해야 하는 경영 관련 정보를 규정한 것일 뿐, 행정 감시와 투명성을 위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의무를 경영공시로 대체할 수는 없다. 

비리와 관치금융 논란 속 금융감독원
 

2017년 9월 22일 서울남부지검이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 내 수석 부원장실과 총무국, 감찰실 등 인사비리와 관련된 5곳을 압수수색한 이날 금감원 로비로 관계자들이 출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금감원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기관을 검사하고 감독하며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하는 공적 업무를 맡고 있다.

공공기관운영법상으로는 공공기관에 해당하지 않는 특수법인의 지위를 가지지만, 특별법인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융위 산하에 설치된 특수법인이기 때문에 정보공개법상으로는 정보공개의 의무가 있는 공공기관에 해당한다. 또한 금감원장이 대통령이 임명하고 차관급 대우를 받으며 당연직 금융위원이 되기 때문에 금감원은 사실상 공공기관처럼 운영된다. 

막강한 권한과 역할에도 금감원은 민간기구라는 이유로 국회의 감사, 감독에서 제외되어 왔기 때문에, 금감원을 아예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공적인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금감원에서는 2016년 채용 비리 사건으로 고위직 임직원들이 구속되는 등 비리와 방만 경영의 문제가 크게 불거졌던 바 있다. 최근 5년 사이에도 직원들의 차명거래와 금품수수 등의 비리 범죄가 적발되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다. 

지난 2018년 12월 금융위에서 발표한 '금감원 운영혁신 추진 현황 및 2019년도 금감원 예산안 확정' 문서에 따르면 금감원은 업무추진비를 부서별로 운영하지 않고, 부국장이나 수석 등 무보직자에게까지 '직위 업무추진비'를 지급해 실질적으로 급여를 보전하는 형태로 부적절하게 사용해 예산이 삭감되기도 했다.
 

'금감원 운영혁신 추진현황 및 2019년도 금감원 예산안 확정' 문서 금감원이 업무추진비를 부서별로 운영하지 않고 부국장이나 수석 등 무보직자에게까지 '직위 업무추진비'를 지급해 실질적으로 급여를 보전하는 형태로 운영했다는 내용이다. ⓒ 금융위원회


여러 논란에도 금감원이 특수법인이라는 민간기구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금융기관을 감독하고 조사하는 업무가 전문성과 지속성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명분 때문이다. 그러나 2022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역대 최초로 검사 출신을 금감원장으로 임명하면서 금감원은 '관치금융'의 우려와 논란마저 불거졌다. 지난 2년여 임기 동안 이복현 원장은 금융기관 인사 개입, 금투세 폐지 주장 등 정부 기조에 편향된 발언 등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금감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방법은 원장을 비롯한 기관 전체가 예산 사용 내역, 감사 조치 사항 등 행정 감시를 위한 정보들을 적극적으로 공개해 자율적인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검증받는 것이다. 감사원의 지적 사항을 개선하는 조건으로 매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는 것을 유보하고 있지만,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는 가장 기본적인 제도인 정보공개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기관이라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정보공개센터는 모든 공공기관이 공개하고 있는 업무추진비 내역마저 비공개하는 금감원을 대상으로 정보공개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도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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