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과 방 사이 거실에 테이블 식탁 놓을 공간이 부족해 2인용 좌식 식탁을 이용했다.
이혁진
어색한 풍경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빌라에 화장실은 한 개, 아버지와 나는 각자 '휴대용 소변기'를 준비했다. 아내가 화장실을 편히 사용하게끔 한 배려인데 아내도 자기 '요강'을 따로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큰것(?)을 보려면 화장실에 누가 있는지 미리 확인하는 절차가 일상이 됐다. 나는 중간에서 그 일을 철저히 '교통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집수리 현장을 지키다 저녁에 빌라로 복귀할 땐 폭염 때문인지 피곤했다. 선풍기는 뜨거운 바람을 불어대고 있었다. 불편한 게 많아 빌라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마침 이때 아내 건강도 안 좋았다. 고생이 많다는 말에 "1개월만 참으면 되는데 뭘요?"라는 아내 표정에 나도 모르게 힘이 났다. 고달픈 아내는 내가 불평 없이 현장에 있는 것에 고무된 것 같았다.
한편 우리가 사는 빌라는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이 사실은 주차 문제로 서로 인사하다 알았다. 이들은 내게 깍듯이 인사하면서 자신의 직업과 주차하는 시간대까지 자세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순수한 이웃 감정을 느끼는 기분이다.
그러면서 빌라에는 서로 아는 조선족들이 많다고 귀띔 했다. 다들 어려운 처지에서 단기 셋방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 의지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들은 예의도 발랐다. 빌라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나를 보면 담배를 뒤로 감추거나 껐다. 이는 나도 어릴 적 어른들에게 했던 행동인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빌라의 주차 문제는 심각해 밤이나 새벽에 몇 번이나 호출됐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힘든 삶을 이해하기에 군말 없이 차를 빼주었다. 수고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바깥에 한 달 살면서 남이 사는 모습을 얼핏 봤다. 나보다 더 힘겹게 살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았다. 불편한 환경에서 가족은 서로 의지하며 격려하는 구성원이라는 사실도 새삼 확인했다.
빌라 가족들과 정들 즈음 우리는 '진짜 우리 집'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역시 '살던 옛집'이 편하고 좋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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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아버지와 셋방살이... 집수리가 이렇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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