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철거로 나온 폐기물
이혁진
철거 작업은 먼지를 마셔가면서 하는 일로 결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날씨조차 무척 덥고 습했다. 인부들의 옷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3시 전후 나는 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어주었다.
조공들은 아이스크림을 기다렸다는 듯 먹었다. 이들이 쉬는 동안 궁금한 것을 여러 가지 묻고 싶었지만 못했다. 김씨는 다른 인부들에게 일을 재촉하는 듯했다. 인부들이 쉬는 것 자체가 반갑지 않은 눈치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김씨에게 직접 묻거나 아니면 김씨가 없을 때 따로 인부들에게 물어야 한다 걸.
철거공들은 연이틀 오후 5시 넘어 작업을 끝냈다. 김씨는 인부들이 보통 4시까지만 작업하는데, 자기가 공사를 늦게까지 시켰다고 귀띔 했다. 내 딴에는 열심히 공사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끝내면 그만큼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인 듯했다. 조공들은 불만이 있어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한편, 내가 집수리 현장을 지키고 보는 데 대해 김씨와 조공들의 반응은 서로 약간 다른 것 같았다. 내 뜻을 말하거나 바람을 이야기하면 설비업자 김씨는 조공들에 비해 더 날카롭고 예민한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반응 뒤에는 집주인이라도 곁에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이 싫다는 속내가 숨어있었다. 그렇다고 '업자가 다 알아서 잘 해주겠거니' 믿는 것은 얼마나 순진한 일인가.
나는 눈치를 보거나 말거나, 일단 수리를 맡긴 집주인으로서 직접 작업과 공사 현장을 관찰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자 권리라 생각했다(이 신념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집주인인 내가 작업 현장을 지키는 것에 대해, 리모델링 전문가인 친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각자 조금씩 양보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업자의 기술력을 믿고 맡긴 이상 수리도 맡겨줘야지, (집주인이) 일일이 간섭하면 자존심이 상할 것이 분명하다. 공사를 원만하게 이끌려면 서로 솔직한 대화를 나누되, 상대를 인정하며 어느 정도 타협을 감수해야 한다."
고개가 끄떡여졌다. 어느 날엔가는 철거를 지켜보는 작업 현장에서 나는 잠시 만감이 교차하기도 했다.
리모델링을 통해 나오는 집이 반드시 지금보다 낫고 안전한 집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으면서 괜한 과욕을 부리는 건 아닌지, 철거란 오래된 집의 숙명이라지만 무언가 부수고 고치는 것만이 능사인지 등 여러 상념이 고개를 들어서다.
어쨌든 오래된 집이 철거되고 그 안을 들여다보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가는 시간은, 나로서는 처음 겪는 생소한 상황이었지만 동시에 살아있는 공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왠지 몸은 무겁고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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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 시작 뒤... 현장 지켜볼까, 그냥 믿고 맡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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