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증·응급환자의 진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 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경증 환자를 지역 병의원으로 분산하는 대책을 발표한 8월 22일 오후 의료진이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실 대기실 앞을 지나치고 있다. 2024.8.22
연합뉴스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2천 명 발표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7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사실 의대 증원 문제가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총선용이란 견해가 많았다. 또 증원 규모도 협상할 때 낮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2천 명을 고집한다.
의정 갈등이 길어지며 의사들이 해외로 나가려고 한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정부와 대통령실은 밀고나가겠다는 입장에 변함없다. 추석 연휴가 다가오며 의료 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금 상황에 대해 의사들은 어떻게 볼지 궁금해 지난 5일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2천명 증원 먼저 꺼내고 이것 수습하려고 후속 정책"
-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로 시작한 의정 갈등이 7개월째인데 해결될 기미를 안 보이고 있는데 현재 상황 어떻게 보세요?
"의정 갈등으로 불리는 현상이 7개월 정도 됐죠. 지난주에는 의료 개혁 특위의 제안 발표가 있었습니다. 정책 발표의 인상은 첫째,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의도도 정책 당사자가 받아들일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지금 정책이 좋은 정책인지를 떠나서 과연 그 여건 조성에 정부가 성공하고 있느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순서인데 정책이 발표되는 상황을 보면 순서가 제대로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의대 정원 조정처럼 큰 정책들은 이미 그 전에 충분한 정책적인 배경이나 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평가, 학계나 정책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이 끝난 다음에 나와야 하는데, 지금 정책 순서는 2천 명 증원을 먼저 꺼내두고 나중에 이를 수습하기 위한 후속 정책들을 내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정부의 자세인데 지금 의정 갈등의 원인이 된 의대 정원 문제 제외하고 나머지 정책들은 국민도 좋고 의료계도 좋은 방향으로 재원 많이 투입해서 증원되면서 생기는 문제나 반발을 재원의 투자로 극복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거죠. 하나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머지 정책들의 뒷받침이 필요하면 소탐대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개혁안 중 개별 정책들은 의료계와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실손보험 개혁,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 전환은 의료계의 전폭적인 정책적 뒷받침과 공통된 인식, 합의가 있어도 실현이 어려울 수도 있고, 재원이 버티기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또 미래 세대의 교육 기회나 재정 부담 문제도 있고요. 그런데 지금처럼 의정 갈등이 극심한 상태에서 그런 정책들을 뒤늦게 발표하면 곱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결국 순서가 잘못됐고, 정책을 받아들이고 협의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설득이 모자랐다고 봅니다."
- 정부의 말은 정부가 발표하기 전에 의료계와 협의하고 한 거지 일방적으로 발표한 게 아니라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정부가 의대 증원의 근거로 제시했던 것이 과학적 정책 설정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는 점을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또 증원 자체에 대한 논의는 의료계와 일부 했을 수 있지만 증원의 규모나 시기는 정부가 갑자기 발표했으니 일방적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이런 정책적 주제에 있을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정부의 정책 판단은 정책 의도에 맞춰서 근거가 따라가는 경우도 많거든요. 정부의 이번 정책은 정책 결정권자의 의도가 있고 그 의도에 따라서 근거들을 취사 선택하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 교수님은 처음에 의대 증원 2000명 발표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지금까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첫째는 실현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다음 갈등이 굉장히 오래 갈 수 있고 그 갈등은 결국 모두의 피해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보건 의료 정책은 정부, 국민, 의료계 등 세 주체가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구조거든요. 그래서 도덕적 해이가 가장 쉽게 일어날 수도 있고,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변화는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가 국민과 의료계의 신뢰를 얻어야만 하거든요.
정부의 갑작스러운 증원 발표는 장기적 신뢰를 얻어야 할 보건 의료계와 정부의 미래 의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의 고리를 한 번에 끊어버린 거죠. 저는 원칙적으로 의대 증원은 장기간의 연간 몇 % 이내 소수의 조정은 충분히 가능하고, 그 변화는 인구 구조에 따라 늘거나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번에 수백 명, 수천 명의 급격한 변화는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기도 어렵습니다."
- 교수님은 이게 오래갈 거로 생각했다고 했잖아요. 오래라는 게 어느 정도예요?
"오래라는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정부와 의료 공급자, 국민 간의 신뢰 구조가 깨지는 것은 20년 이상 갈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둘째 전공의와 학생들이 현장을 떠난 상황은 이렇게까지 오래 지속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정부가 어느 정도 충분한 타협안을 제시하리라 보았습니다."
- 정부가 2천 명을 발표하고 의사들과 협의하면서 증원 규모를 낮출 거로 알았거든요. 그런데 아니었죠. 왜 2천 명을 고집할까요?
"가장 큰 이유는 정책 결정권자의 의지입니다. 정책 결정권자는 자신의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의료계의 변화가 불가능할 거로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결정을 밀어붙이는 측면이 있을 겁니다. 또 중요한 문제는 정부의 의료계에 대한 인식인데 정부는 의료계를 보건의료 정책을 함께 이끌어 나가는 동반자라고 생각하기보다 정부의 정책에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어차피 저 집단들은 우리가 뭐라고 말해도 들어주지 않을 집단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밀어붙이고 기다리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의 미래 정책에 대한 인식, 단합력에 대한 무지와 무시도 있었다고 봅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예전 세대보다 더 활발히 사고하고 활동을 공유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사람 살리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의사들마저 포기하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