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중심에 둔 의료의료를 중심에 놓고 환자를 찾아오는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는 대신, 환자를 중심에 놓고 의료가 어떻게 움직여야 환자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을지 살필 때 비로소 환자의 필요를 제대로 충족할 수 있는 의료를 만들 수 있다. Designed by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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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료, 나쁜 의료, 이상한 의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동상이몽'의 상황에 놓이게 됐을까. 사용자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고 잘 작동하는 스마트폰의 내부는 엔지니어가 아니라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의료 체계가 사람들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고 잘 작동하고 있다면, 의료체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민들이 궁금해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바람직한 의료체계'를 만든다는 목표와 의사와 정부의 서로 다른 주장이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 살피려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의료체계가 무엇인지 톺아보며 대안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의료체계를 가장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문서, 세계보건기구의 2000년 보고서를 보자. 이 보고서는 보건의료체계를 '건강을 증진, 회복, 유지하는 일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한다(관련내용:
The world health report 2000 - Health systems: improving performance). 사람에 따라 보건의료체계의 정의는 조금씩 다르지만, 건강을 증진·회복·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의사들의 주장을 살펴보기에 앞서 학술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구분해서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 보건의료체계가 산출하는 것은 '건강'이 아니라, '건강을 증진· 회복·유지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의료체계는 '건강'을 생산하는 체계가 아니다. 다만 '이렇게 하면 건강이 나아진다'고 알려진 서비스를 생산할 뿐이다.
'건강을 증진·회복·유지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정의를 뜯어보면 의사와 환자 간의 '동상이몽'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체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첫 번째로 부딪히게 되는 어려움은 건강은 무엇이냐는 점 그리고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1948년 세계보건기구는 단순히 질병 또는 병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육체적·정신적 및 사회적 복리(well-being)에 있는 상태를 건강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죽지 않거나 질병이 낫는 일 외에도 괴롭고 불편하거나, 중병의 가능성으로 불안해하는 상황도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서비스와 상품이 대폭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 난점은 의료란 물건이 아니라 서비스로 나타난다는 데 있다. 완전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흔히 실물이 있어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을 재화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행위를 서비스라고 부른다. 서비스의 중요한 특징은 생산되는 장소에서 동시에 소비가 이루어져 보관이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서울에 있는 의사가 간부전을 진단하기 위해 신체 진찰을 한 후에, 그 서비스를 택배상자에 고이 담아 지방 환자에게 보낼 순 없단 소리다. 원격의료조차도 특징적이고 제한적인 부분에서 시공간적 거리를 좁힐 뿐 생산되는 곳에서 소비되는 의료의 성격이 바뀌는 건 아니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픈 사람과 같은 장소에 있지 않으면 의료의 대부분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 번째 곤란함은 건강을 증진·회복·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범위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앞서 얘기했듯 어디까지를 건강이라 볼지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의료의 범위도 모호해진다. 예를 들어 야구 선수는 공을 잘 던질 수 있도록 트레이너가 마사지도 하고, 피도 뽑고, 침도 놓는다. 결과적으로 야구 선수가 야구를 잘하면 정신적 복리를 누릴 테니, 트레이너가 하는 여러 처치를 의료라고 보지 말아야 하는 과학적 근거가 존재할까?
횡행하는 온갖 비급여 의료가 보여주듯, 무엇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의료인지는 절대적이지 않다. 의료를 상품으로 팔면 팔수록 이익이 되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쪽에는 수액을 맞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의사가 잔뜩 있고, 반대쪽에는 먹는 데 문제가 없다면 수액을 맞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의사가 있다. 값비싼 의료를 구매하는 자기 돌봄으로 마음이 편해지거나, 잠시 누워 쉬면서 수액을 맞는 시간을 위안으로 여기는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좋은 의료, 나쁜 의료, 이상한 의료를 간단하게 구분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의료서비스는 언제, 누가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도움이 되기도, 되지 않기도, 심지어는 해롭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