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 통합응급의료정보 인트라넷에 뜬 ‘진료 불가’메시지. 2024년 8월 11일 검색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응급실 뺑뺑이와 퇴원을 권유받은 환자들, 병원이 문을 닫을까 불안해하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이미 숱하게 보도된 의료 대란의 한 장면이라면, 여기서부터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 뒷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2024년 2월 19일로부터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병원까지 버스를 갈아타고 한나절을 가야 하는 농어촌지역, 전공의 이탈로 의료 대란 운운하는 보도가 나오자, 농어촌 지역 주민들은 술렁였다.
"그럼, 이제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하는 기여?"
"우리는 아직 들은 게 없는데?"
상황이 심란하게 흘러갔지만 아무도 주민들에게 친절한 설명이나 안내와 조정을 해주지 않았다. 진료 한 번 받기 위해서 집에서 30분을 걸어서 버스정류장에 가는 그리고 반나절에 한번 오는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원정'을 감행해야 하는 농어촌의 현실을 고려하면, 진료 일정을 두고 일어난 주민들의 불편과 불안은 도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이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의료 인프라 속 주민들은 영문을 몰라 병원 이용을 더욱 줄였다. 진료 예약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전화는 통화량 폭주로 먹통이 됐고, 인터넷을 이용할 줄 모르는 주민들은 그저 발을 동동 굴렀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은 없었다. 정부는 그저 의사들에게 진료를 개시하라며 엄포를 놨고, 단 한 번도 그 명령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다만 주민들의 불안을 부추기고, 사태를 장기화시켰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냉소가 이어졌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의료는 그저 주민들의 삶에서 부재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미 턱없이 부족한 의료 자원 속에서 생활해 온 주민들에게 이 대란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국가와 지역, 착취와 통치 사이
조금 더 노골적으로 이 사태의 본질이 드러난 시기는 2024년 3월 11일. 정부가 본격적으로 지역 공중보건의사를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파견하면서부터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 시기 각 지방정부에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대형 병원으로 지역 공중보건의를 파견하겠다고 통보한 뒤,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이 공백을 메울 계획을 세웠다.
지방정부는 즉각 항의했다. 지역 공중보건의가 매년 줄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차출까지 이뤄지면 주민들의 불편이 더욱 커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로 파견하는 상급종합병원은 한국에서 가장 고도의 의료를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전국 47개 기관 중 절반 가량인 23곳이 서울과 경기 지역에 있다. 결국 지역 주민들은 이용할 수 없는 의료기관으로 주민들의 일차적인 건강돌봄을 담당하던 의사를 차출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항의는 한마디로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다. 물러서지 않겠다고 선언한 정부의 태도는 강경했다. 통보 직후 바로 차출이 이뤄졌고, 당장 지역 보건지소에는 불이 꺼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수도권으로 차출된 공보의 108명 중 83명(76.9%)은 비수도권에서 차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