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 출국' 논란에 휩싸인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군 관련 소식을 접하면 자연스럽게 군복무 시절이 떠오른다. 많은 이들도 비슷할 것이다. 해병대 채 상병의 죽음과 박정훈 대령의 수사 무마 논란 때도 그랬고, 최근 이종섭 전 장관이 수사 결과 언론 브리핑 취소 직전 대통령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보도를 접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장관의 윗선이 개입하지 않고서는 전날 결재까지 한 사안이 뒤집힐 리 없으리라는 합리적 의구심을 확인해 주는 보도였다.
출국금지 상황에서도 사본을 들고 호주 대사로 황급히 공항을 통과하는 보도를 접하면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진실은 드러나리라 믿는다.
그 옛날 사단장의 부대 지휘 방식
필자가 사단사령부 장교로 복무할 당시 사단장은 사고 예방에 사활을 걸었다. 사고 예방이 주된 목적이다 보니 예하 부대의 사소한 훈련까지 간섭하며 소대장 수준의 수많은 세부 지시를 내렸다. 혹한기나 혹서기에는 훈련 시간을 줄이고 강도를 낮추는 일도 잦았는데, 이는 사고가 진급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사단장은 지시 이행 여부도 불시에 점검했다. 사단 참모들을 말단 소대급까지 보내 자신의 지시사항이 병사들에게 숙지되어 있는지 상시 점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대장, 대대장들은 오로지 사단장 지시에만 신경을 썼고, 그 외의 일은 관심 밖이었다. 사단장의 지휘관 평점이 진급에 결정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단장의 지시는 예하부대로 내려갈수록 그 강도가 더 세졌다.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의 추가 지시사항이 더해져 말단 소대급에서는 사단장의 지시가 폭탄이 되어 있었다. 예하부대 간부들은 지시 이행 보고서 작성에 날밤을 새웠고, 사단 참모부도 마찬가지였다. 겉보기에는 분명 밤낮없이 다들 분주했지만, 바쁜 이유가 문제였다. 강한 군대를 만드는 일과는 별로 상관없는 사단장 지시사항을 챙기느라 모두가 바빴던 것이다.
이렇듯 옛 기억이 되살아나는 건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이 그 옛날 사단장의 부대 지휘 방식과 닮아서다. 대통령은 수많은 지시를 쏟아내고 감사원을 동원해 이행 여부를 감찰한다. 역대급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민생과는 동떨어진 지시가 하달되고, 대통령의 결정에는 맹목적 복종만이 강요된다.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에게는 권력기관을 동원한 겁박과 위협이 뒤따른다. 자유를 강조하지만, 민주주의의 근간인 의사표현의 자유는 심각하게 위축되어 있다.
용산 대통령실 이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의대 증원,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잼버리 사태 등 굵직한 사안에서 이런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연구개발 예산 삭감은 올해 예산안 제출 시한을 이틀 앞둔 시점의 대통령 발언이 촉발했다. 기획재정부는 부랴부랴 5조 2천억 원(16.6%)의 연구개발비 삭감안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