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연구실에서 틈틈이 고무줄을 당기며 궁력을 기르는 기자의 모습
김경준
그 작은 활 하나 당기는 게 뭐 그리 힘드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대에서 과녁까지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금세 수긍이 갈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활터의 규정 사거리는 145m이다. 이는 조선시대 무과시험 당시 120보 거리에서 각궁(角弓: 나무, 힘줄, 쇠뿔 등 전혀 다른 성질의 재료들을 결합해 만든 우리나라의 전통 활)으로 유엽전(촉의 모양이 버들잎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화살)을 쏜 데서 비롯한 것으로, 이를 미터로 환산하면 150m에 가까운 거리가 되는데, 1960년대 무렵 지금의 거리로 정착됐다 한다.
양궁 사거리가 70m인 데 비하면 무려 두 배가 넘는 거리다. 145m 너머의 과녁으로 화살을 보내려면 그만큼 장력이 센 활을 당길 수 있어야 하는데, 초보자에게 그런 힘이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활을 충분히 당길 수 있는 힘을 기르려면 통상 1~3개월은 걸린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활쏘기에 갓 입문한 초보자들 중 중도 포기하는 이들은 대개 이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수학여행 가서 아주 약한 활로 국궁체험 하던 기억만 생각하고 도전했다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힘드니 싫증이 나는 것이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되는데
그렇기에 활터에서는 처음 사대에 선 이들을 격려해 주는 문화가 있다. 교육을 마치고 비로소 사대에 설 자격이 주어진 신사(초보 궁사)들은 '집궁례'라고 하여 모든 사원들이 보는 앞에서 첫 순 5발을 내게 되는데, 그 결과 화살을 과녁에 맞혔든 못 맞혔든 박수가 쏟아진다.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극복하고 마침내 사대에 선 초심자들에게 보내는 축하의 박수인 셈이다.
부끄럽지만 활을 처음 배우던 10년 전의 나는 이 과정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타고난 근력이 부족했던 탓에, 같이 시작한 동기들과 비교했을 때도 좀처럼 궁력이 늘지 않아 더 위축되고 자괴감을 느낀 나머지 활 배울 의지를 잃고 만 것이다. 결국 기초 교육 이수 후 이어지는 심화 교육을 포기한 채, 오랜 세월 활을 내려놓게 됐다.
그러다 약 2년 전인 2021년 12월, 서울의 한 실내국궁장에서 열리는 활쏘기 수업에 등록했다. 활을 내려놓은 지 근 10년 만의 재도전이었다. 오랜 시간 활을 잡지 않아 떨어진 궁력을 기르기 위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여전히 지루하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뒤늦게 다시 시작한 만큼 '이제는 포기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며 수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20일. 처음으로 과녁에 화살을 맞혔다. 다시 활쏘기를 배우기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이룬 결실이었다. 이때의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5발의 화살을 내리 과녁에 관중시키는 몰기를 처음 했을 때보다도, 이때의 감격이 더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쏜 화살이 저 멀리 과녁에 맞았을 때의 전율이란(관련 기사 :
활쏘기가 가르쳐 준 역설... 취업도 이렇게 해보려 합니다 https://omn.kr/26z2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