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모래톱 모습(좌) 4대강 사업 후 현재 모래톱의 모습(중?우)
김영희
다시 시신이 떠내려왔다는 중리마을 모래톱으로 향한다. 이정우가 말했다.
"저는 초∙중학교 때 철길 따라 걸어서 이모댁에 자주 다녔어요. 모래톱은 아주 넓어서 높은 곳은 포도, 수박, 고구마 등 작물을 심었고 낮은 곳은 재첩, 조개 백합, 잉어 등 잡으면서 수영도 하고 놀 았어요. 어릴 때 (양산시 원동면 중리마을) 이모댁에 자주 갔는데 모래톱에 이모 밭이 있었거든요. 동네 사람들이 모래톱 밭에 나가보니 작원관지에서 수장된 시신들이 모래톱에 걸렸더래요. 시신을 보는 순간 장사는커녕 빨갱이로 몰리는 살벌한 시기라 집에서 가지고 나온 장대로 시신을 낙동강 물에 밀어 넣어 떠내려 보냈대요."
나는 "그 시신들이 어디로 갔을까" 물었다. 이정우가 답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낙동강에서 다대포를 지나 시속 3~4km로 가면 다대포에서 대마도까지 거리는 50km 정도인데 하루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겠네요" 한다.
그래서 경남지역 마산, 통영, 거제, 낙동강 등 중부 경남지역에서는 보도연맹원들이 바다에 수장된 경우가 많았다. 수장을 얼마나 많이 시켰는지 시신 중 일부가 물살이 드세기로 이름난 대한해협을 지나 일본 대마도 해안까지 밀려가서 일본 어민들에 의해 시신이 인양돼 현지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