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가득한 한낮의 제마알프나광장.
김연순
밤 10시가 넘었음에도 제마알프나 광장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휘황찬란한 조명들이 켜진 노점들이 열을 맞춰 늘어서 있고 호객하는 사람, 흥정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배가 몹시 고파 일단 식당을 찾았다. 광장의 점포들은 거의 좌판이었고 식당들도 그랬다. 고기와 해산물 바비큐를 하는 곳들이 많았고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광장 안으로 들어섰다. 호객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어느 점포 한 곳 앞에 섰다. 그 순간,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는데 내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절로 비명이 나왔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무서웠다.
줄줄이 걸려있던 양의 머리
나를 극도의 공포로 몰아간 그 무언가는 바로 양의 머리였다. 양의 머리들이 바비큐 된 채로 음식 진열장에 놓인 채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던 거다. 평소 생선 머리도 잘 못 보는 나로서는 그 장면이 너무도 충격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무방비 상태에서 정면으로 딱 마주했기에 더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다.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었다.
이후엔 남편의 손과 팔을 두 손으로 꼭 부여잡고 눈은 땅바닥만 쳐다보며 다녔다. 웬만하면 그랬는지 남편은 "여기도 있다, 여기도 또 있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온몸에 절로 힘이 들어간 채 남편을 놓칠세라, 딱 붙어 다녔다. 생선 머리도 못 보는 나 같은 쫄보에게 대체 이게 뭔 일인지,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지,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계속 이러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다니나, 왜 이런 곳에 나를 데려왔나 싶어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조금 더 걷는데 남편이 괜찮은 곳 있다며 들어가자 한다. 중앙의 노점들을 벗어나서 가장자리에 있는 식당이다. 자리에 앉으니 맥이 빠지며 온몸이 축축 처지고 가라앉는 것 같다. 크게 한숨 쉬며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제야 숨이 돌아오고 정신이 든다.
남편은 계속 나를 안심시키며 위로하는데 그래도 걱정이 놓이는 건 아니었다. 주문한 파니니와 주스를 먹는데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음식이 들어가니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다.
왜 식당 점포에 양의 머리들을 걸어두는 걸까? 나중에 알고 보니 사막을 끼고 있는 나라의 문화는 고기가 신선한 식재료임을 증명하기 위해 바로 잡은 동물의 머리를 걸어두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기도 야채도 모두 개별 포장을 하지 않고 보여주면서 판매한단다.
그 모습이 내게는 충격이고 힘들었지만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일 테니 존중하자고 마음먹었다. 하긴 내가 잘 안 봐서 그렇지 우리나라 재래시장에도 돼지머리가 통째로 즐비해 늘어서 있긴 하다. 남편 말에 의하면 스페인 재래시장에서도 양의 머리부터 몸통까지 통째로 진열해 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내가 무서워할까봐서 못 보게 했단다. 그래,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니 주의하며 안 보면 되는 거지 싶었다.
다음날 아침 어제의 그 광장으로 나왔다. 제마알프나 광장은 숙소에서 아주 가까웠고 어디를 가려고 해도 그 광장을 지나야 했다. 아침이 되자 놀랍게도 그 넓은 광장이 텅 비어 있다. 영업을 마감한 점포들이 천막을 두른 채 군데군데 있고 청소 차량이 이리저리 다니며 청소를 하고 있다. 어젯밤 정신을 쏙 빼놓은 그 화려했던 광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했다. 그러고 보니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제 공항에 마중 나온 픽업 기사가 숙소 앞까지 가지 않은 까닭을 말이다.
영화 속에서나 본 장면들이 눈 앞에
저녁의 광장은 차량이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점포와 사람들이 가득했고 리아드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은 차가 다닐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광장 입구에서 택시가 섰고, 이후엔 리어카로 숙소까지 우리 짐을 날라 주었던 거다.
그것도 모르고 야밤에 낯선 모로코까지 와서 급기야 짐을 도둑맞는 줄 알고 기겁을 했는데, 연유를 알고 보니 이제야 웃음이 나왔다. 사막도시는 햇빛이 뜨거워서 골목을 좁게 만들고 이웃한 집의 그림자로 햇빛을 가린다고 한다. 동시에 좁은 골목이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단다.
마라케시에 머무는 3일 동안 제마알프나 광장을 수시로 지나다녔다. 제마알프나 광장은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는 곳으로 마라케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광장의 주변으로는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광장의 중앙에는 천막을 친 노점들이 가득하다. 광장에는 온갖 먹을거리, 마실거리, 구경거리들이 한가득이다. 과일 가게 상인은 산처럼 높이 쌓인 과일을 즉석에서 갈아 주스로 만든 후, 일단 먹어 보라고 한다.
먹어 보면 맛도 있고 가격도 저렴해서 안 살 수가 없다. 특히나 오렌지 주스가 달콤하고 상큼하다. 낮의 광장에서는 갖가지 볼거리가 있고 밤의 광장에는 음악 공연이 있다.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나서 가 보았다. 피리를 부는 사람 앞에 나란히 코브라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동화책이나 영화 속에서나 본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