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메이지신궁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손기정
손기정기념관
국가 연주가 끝나자 손기정은 인솔 교사에게 달려가 울부짖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왜 우리나라는 국가가 없습니까? 어째서 '기미가요'가 조선의 국가입니까?
" 일본 기자들이 인솔 교사에게 왜 손기정 선수가 울고 있으냐 물었을 때, 선생님은 '베를린올림픽에 나가게 되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둘러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1936년 5월 베를린올림픽으로 가기 위한 최종전이 펼쳐집니다. 당시 최종전에 오른 조선인 선수는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였습니다. 마라톤은 나라마다 최대 3명이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3명 중에 조선인 2명이 반드시 들어가기 위해 작전을 짭니다. 일본 선수들의 체력을 빼기 위해 손기정 선수가 앞으로 치고 나갑니다. 일본 선수들은 페이스를 잃었고, 남승룡 선수가 1위 손기정 선수가 2위로 들어와 최종 올림픽 후보에 선발됩니다.
올림픽 개막을 두 달 앞두고 마라톤 선수들은 베를린으로 떠납니다. 마라톤 코스를 미리 답사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선수단보다 미리 출발하는데요. 1936년 6월 3일 아침 조선체육회장이었던 윤치호와 양정고등보통학교 교장 교감 선생님이 모여 손기정, 남승룡 선수 격려회를 엽니다. 손기정은 출전하는 포부를 이렇게 밝힙니다.
"반드시 훌륭히 싸우고 돌아오겠습니다. 저희들은 오늘 베풀어주신 여러분의 따듯한 격려에 보답하고, 해외에 살고 있는 많은 동포들의 뜨거운 응원과 기대에 부응하도록 늘 자중의 정신을 잊지 않고 힘껏 싸우겠습니다."
6월 4일 오후 3시 30분 서울역으로 인파가 몰려듭니다. 양정고등보통학교 전교생과 교직원들, 시민들이 몰려와 우렁찬 박수 소리를 울립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선전을 기원했습니다. 손기정 일행을 태운 기차는 국경을 넘어 단둥, 봉천, 하얼빈을 거쳐 6월 8일에는 소련과 인접한 만주리에 도착합니다. 이어 일행은 시베리아횡단철도로 갈아타는데요.
당시 조선 사람들은 해외로 가기 위해 철도와 배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배로 이동할 때보다 기차로 이동할 때 시간과 비용이 1/3가량이었기 때문에 기차가 인기가 높았습니다. 만주횡단철도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된 서울역은 당시 국제열차가 다니는 국제역이었습니다.
손기정이 서울을 떠나 모스크바에 도착하는데 열흘이 걸렸습니다. 기차가 역에 멈출 때마다 손기정 선수는 기차에서 내려 철길을 따라 뛰었는데요. 열차에 있는 동안 몸이 굳을 수 있어서 몸을 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손기정은 소련 철도를 염탐하려는 스파이로 오인당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