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수업학습지를 앞에 놓고 열심히 모둠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
안사을
그동안 아이들은 수학여행으로 흔히 알고 있는 '테마식 현장체험학습'에서조차 이미 짜인 여정 속에서 수동적으로 참여했던 경험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여정의 틈새를 채워야 하는 활동 앞에서 학생들은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학습지를 앞에 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채 볼멘소리를 토해냈다.
"쌤. 뭘 어떻게 하라고 하는지 진짜 하나도 모르겠어요."
"당연히 모르지. 선생님이 방법을 아직 안 알려줬잖아요."
"알려줘도 모를 것 같아요."
"아니에요. 알려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심지어 재밌기까지 할걸?"
이렇게 애교 섞인 실랑이를 하다가 실제로 식단을 짜는 상황이 되니 막상 아이들은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쌤. 근데요. 진짜 우리가 먹고 싶은 것 다 먹어도 돼요? 라면, 막 그런 것도 뭐라고 안 해요?"
"여정을 보고 알아서 정하세요. 예를 들면, 등산을 가야 하는데 라면 하나만 먹고 가면 힘들겠지? 아니면, 다른 모둠은 저녁에 고기 파티 하는데 귀찮다고 컵밥 같은 것만 사 먹으면 뭔가 애매 할 거야. 그치?"
"에이! 누가 저녁에 컵밥만 먹어요. 캠핑장에서는 고기죠~!"
방식은 이렇다. 한 끼에 8000원인 식비를 모둠별로(3, 4인) 실제 기행(10월 13일 ~ 20일) 직전에 지급한다. 기행 동안 식사는 22번이고 그중 열여섯 끼니를 아이들이 직접 짜야 한다. 여섯 번은 식당에서 사 먹는데, 어디서 먹을지 무엇을 먹을지 얼마가 드는지를 미리 조사해야 한다. 열 번은 야영장에서 해 먹어야 하고, 메뉴와 장 볼 것을 미리 정하고 대략의 비용까지 조사해야 한다.
4인 기준으로 51만2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을 두고 아이들은 진지하게 식단을 짜나갔다. 버스에서 하차하는 위치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인터넷 지도를 켜서 함께 의논하는 한편 교사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능동적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또 하나의 과제는 해당 장소에서 모둠별로, 혹은 개인별로 보고 배울 것들을 미리 조사하는 것이었다. 여정은 하나이지만 그곳에서 느낄 것은 각자 다를 것이므로.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감정을 벌써 어찌 알겠냐마는 이 과정을 통해 '여행지에서는 무언가 느끼고 배워야 하는구나'라는 마음을 어렴풋하게 들게 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