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조금 천천히 나이 들고 싶다.
픽사베이
당장 거울 앞에 섰다. 아이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지금 상태는 방치에 가깝다. 미간 주름뿐만 아니라, 둘째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더욱 짙어진 기미와 잡티가 도드라졌다. 최근에 뾰루지가 올라왔던 자리에는 검게 흉터가 남았다.
마흔이 넘으면서 피부 재생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위기의 순간이다. 외면이 이 지경인데 지금 내면의 아름다움을 논할 때가 아니다. 책은 잠시 접어두고 당장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동네에 전문의가 진료하는 피부과가 생겼다던데. 고민할 새도 없이 덜컥 예약을 잡았다.
진료를 받으면서 미간을 짚으며 "여기 주름이 깊어서요"라고 했더니, 의사가 "보톡스는 전에도 맞아 보셨죠?"라고 물었다. 의사의 질문은 단정적이었다. 요즘 보톡스 시술이 그만큼 흔해졌다는 의미일 테다.
"아니요, 처음이에요." 보톡스 시술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나의 대답에 시술을 받아도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매끈하게 펴지지는 않는다고 의사가 설명했다. 혹시라도 시술 후에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당신의 주름이 깊어 그런 거니 이해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아무렴 지금보다야 낫겠지 싶어 그 자리에서 바로 보톡스 주사를 맞기로 결정했다.
어렸을 때 앞니가 톡 튀어나와 있었다. 주위에서는 다들 괜찮다고, 심지어 엄마는 앞니 때문에 더 귀여워 보인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남의 치아에는 관심이 없었을 테고 엄마는 교정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그렇게 말한 게 아닐까 싶다. 어느 순간부터 이가 가지런한 사람을 보면 부러웠다. 누굴 만나든 상대방의 잇속이 가장 먼저 보였고, 이야기하거나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는 버릇이 생겼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지난 어느 날 오전, 산책을 하다가 슬리퍼 차림으로 치과에 들어가 교정을 하러 왔다고 했다. 스물아홉의 어느 날이었고, 그 자리에서 450만 원을 결제했다. 콤플렉스는 그런 거다. 타인은 신경 쓰지 않지만 나는 계속 거슬리는 것, 나만 아는 것, 큰돈을 들여서라도 없애고 싶은 것,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그런 의미에서 미간 주름과 얼굴에 검게 핀 기미는 없애야 할 대상이었다. 심지어 아이 눈에 보일 만큼 사소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미간 보톡스 주사는 3만3000원이었다. 생각보다 저렴해 깜짝 놀랐다(기미 치료는 돈이 더 많이 들긴 하지만). 주사 한 방(사실은 세 방)이면 인상이 달라지는 거였는데 그동안 왜, 공연히 화가 난 사람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다녔는지 모를 일이다.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니었다. 예뻐지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욕망인데 나는 그걸 스스로 조금 부끄럽게 여겼던 것 같다.
치아 교정은 치료에 가깝고(실제로 앞니 때문에 치열이 흐트러져 통증도 있었고 충치가 생기기 좋은 환경이었다) 보톡스 주사는 미용에 가깝다고 생각하면서. 겉모습보다 내면을 가꾸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겉모습을 신경쓴다고 내면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왜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