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서 받았던 음료수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음료수였지만, 그 안에 담긴 친절한 마음은 흔하지 않음을 이제는 잘 압니다.
Joanna Kosinska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제 감정이 틀리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때는 저 자신이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고, 타인의 친절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이 낯설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현재보다 타인의 친절에 대해 의도를 의심하고 평가절하했습니다. 현재의 저라면 저를 생각하는 타인의 마음에 더 집중해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더 크게 가졌을거에요.
그 사건은 그렇게 종료되었고 흘러가서 잊혀져버렸습니다. 그 이후 조현병 증상이 나타났고 증상이 많이 회복이 된 후, 저는 뜻밖의 장소에서 또 다시 작은 음료수 한 병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번 글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저는 뜨개질처럼 이런 저런 손으로 만드는 공예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만든 작업물들을 플리마켓 같은 행사에 나가서 판매하곤 해요. 매출이 크지 않은 편이나 많은 사람들을 보고 만나면서 평소에는 겪을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하기 때문에 종종 참가합니다.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참가하는 장터이지만, 그래도 매출이 거의 없는 날에는 힘이 쭉 빠지긴 합니다. 그 날도 그런 날이어서, 보통보다 일찍 매대 정리를 하고 돌아가려고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보이는 여성분께서 오시더니 제가 판매하는 수공예품을 구매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판매하는 물건들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라서 조금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손님께 직접 하실건지 선물하실건지 여쭤보았어요. 그랬더니 뜻밖에도 같은 플리마켓에 참가해서 조금 먼 매대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오다가다 보았는데 제가 매출이 좋지 않아보여서 응원 차 구매하러 오셨다고요. 그러면서 힘내라는 말과 함께 옛날에 제가 약국에서 받았던 것과 같은 음료수를 한 병 건네주셨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타인이 단지 측은지심으로 인해 저에게 선의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그 분께서 물건을 사가신 뒤, 자리에서 철수하고 그 분 가게로 가 그분께서 판매하시는 물건을 구매했습니다. 안 그래도 감사한데 그 분은 가격을 할인해주겠다고 말해주셨어요. 저는 한사코 만류하고 제값을 치렀습니다.
음료수 한 병이지만
그 날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행복했습니다. 과거에 약국에서 받았던 음료수와 최근 플리마켓에서 받은 음료수에 담긴 선의가 겹쳐졌어요. 옛날에 약국에서 음료수를 받았던 일을 더 이상 나쁘게 해석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습니다.
어찌되었건 음료수를 건넨 약사님은 선의를 저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거니까요. 과거의 저와 최근의 저는 세상을 보고 느끼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기에, 선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도 달라졌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날 받은 음료수 덕분에 피곤함을 잊고 하루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어요.
뉴스를 읽다보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끔찍한 살인이 자주 보도될 때가 많습니다. 그보다 대가와 이유없는 작고 소중한 선행들에 대한 뉴스는 비교적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행위들이 뉴스로 보도되기에는 너무 사소하고 작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일상에서 그런 선의를 갈수록 찾기 어려워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런 선의를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음료수를 통해 전달된 선의는 제게 깊은 인상을 주었어요.
그 날 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지만 제가 받은 선의들은 아직도 마음속에 따뜻함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선의들을 잊지 않는 한 저는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