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 한수원 이사회가 열리는 한수원방사선보건연구원 사무실 앞에서 영광군민대표들이 ‘고준위폐기물 건식저장시설 계획’의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이태옥
서울 한복판에 울려 퍼진 "고준위건식저장시설 반대"
"영광군민들은 오늘 한수원 이사회의 '고준위건식저장시설' 논의 자체가 무효임을 분명히 선언했어요. 지역주민들 의사는 한 번도 묻지 않고 서울 한복판 즈그덜 사무실에 숨어 쥐새끼처럼 방망이 뚜드리면서 백날 결정해 보씨요. 우리가 가만 있나!"
서울 중구 한복판이 낯익은 영광 사투리로 쩌렁쩌렁하다. 30년 넘게 한빛핵발전소와 공존하며 싸워온 농사꾼이자 베테랑 탈핵운동가 노병남 영광군농민회장 목소리다.
4월 4일 '탈핵 잇_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노병남 회장은 대뜸 내일모레 4월 6일 "서울로 데모하러 온다"고 했다. 조은숙 원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에게 연락해 부랴부랴 일정을 잡고 4월 6일 오후 1시 중구 서소문로 한수원 '방사선보건연구원'이 있는 센트럴타워로 달려갔다.
'한수원은 영광군민 동의 없는 한빛원전 내 건식저장시설 계획의 이사회 상정을 즉각 철회하라!'는 현수막을 펼치고 항의 집회를 시작하자 부슬부슬 내리던 봄비도 멈췄다.
한빛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아래 민간감시기구) 위원들과 영광군의회 의원, 영광지역주민 15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집회 사회를 맡은 노병남 회장은 '임시'라는 이름을 달고 '영구'핵폐기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건설'을 지역주민 의견 한마디 듣지 않고 한수원 이사회가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도, 정의도, 자유도 아닌 비열한 폭력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영광은 풍성했던 어장도 포기하고 핵발전소 지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전기를 생산한 죄밖에 없어요."
마이크를 넘겨받은 영광주민은 "1986년 한빛1호기를 시작으로 2002년 한빛5·6호기까지 건설되면서 영광군민들의 행복은 짓이겨졌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민어, 조기로 유명한 칠산 앞바다 어장은 풍성했고 가마미 해수욕장은 여름이면 피서 인파로 넘치는 아름다운 해변이었어요. 그런데 핵발전소가 들어서고는 어느 날부터 잠을 못 자요. 2000년대 초반 짝퉁 부품 사건으로 심장을 오그라들게 하더니 어느 해에는 핵발전소 안에 망치가 들어있다고 하질 않나, 구멍이 100개도 넘게 발견됐다고 하질 않나? 생각만 해도 오싹한 사건 사고들이 줄줄이 터졌어요. 그런데 그것도 부족해서 사업자인 한수원이 고준위 핵폐기물까지 떠안으라는 결정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날 발언에 나선 영광주민들은 "방사선 환경영향평가는 강화됐는데 왜 '해양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항목 자체가 빠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영광군이나 의회에서 반드시 해양 환경영향평가를 추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빛 1~6호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배수로 이미 영광 앞바다는 어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우리 마을엔 벌써 한수원이 관광버스를 돌리기 시작했어요"
한빛핵발전소 인근 마을에 사는 주경채 민간감시기구위원은 한수원 '고준위핵폐기장 대응팀'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벌써 우리 마을에는 관광차가 가동되기 시작했어요."
한수원이 대절한 관광버스에 마을주민들을 태워 관광지와 연결된 핵발전 시설을 견학시키며 고준위 건식저장의 안전성을 선전하는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다른 지역에 1차 견학을 다녀왔고 이번에는 요즘 잘 나가는 순천만을 다녀왔더라고요."
주경채 위원은 "30년 넘게 핵발전소 인근 마을에 살면서 한수원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갈가리 찢고 서로 싸우게 하는 모습을 진저리치게 봐왔다"라며, 존재 자체가 불의한 핵발전소와 추가시설을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마이크를 넘겨받은 노병남 회장의 표정이 황당하다.
"참내 오늘 얼척 없는 일을 다 당하네요. 제 뒤통수에서 누가 동영상을 찍고 있길래 영광군이나 의회 쪽 직원인 줄 알았어요. 그래도 하도 열심히 찍길래 가서 물어봤더니 한수원 직원이랍니다. 주경채 위원이 말한 한수원 홍보팀이 이렇게 백주대낮에 대놓고 활동을 해요."
노병남 회장은 당장 파일을 지우라고 요구했고 지우겠다는 말만 남긴 한수원 직원은 어느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