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을 사는 사람들
Widerstand
러시아인은 중앙아시아로 러시아인의 이주를 장려하기도 합니다. 각 민족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들기 위함이었죠. 러시아인뿐 아니라 다른 슬라브인, 때로 독일인과 유대인도 중앙아시아로 이주했습니다. 1차대전 기간에는 징집에 반대하는 카자흐인을 대규모로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소련이 들어선 뒤에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특히 러시아와 직접 접해 있는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 짙었습니다.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카자흐스탄은 1936년까지도 러시아 아래의 자치 지역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는 미개간지가 많았으니, 그만큼 러시아인 이주자도 많았습니다. 소련이 벌인 집단농장화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였죠. 특히 이 과정에서 카자흐인의 전통적인 유목 생활 방식은 파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뭄과 기근으로 카자흐인 인구는 점차 줄어갔습니다. 특히 1930년대 초에는 대기근을 겪기도 했죠. 늘어나는 러시아인 이주자와 줄어드는 카자흐인 인구는 인구 역전까지 불러왔습니다. 카자흐스탄 땅에 카자흐인보다 러시아인이 더 많아진 것이죠. 이 사건을 당시 집단농장화 책임자의 이름을 따 '골로쇼킨 제노사이드'라고 부르기까지 합니다.
스탈린 시절 카자흐 민족주의 인사는 대부분 숙청되었습니다. 흐루쇼프 시절에도 토지 개간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결과는 심각한 실패였죠. 소련 정부가 카자흐스탄에 건설한 핵실험장 문제는 지금까지도 카자흐스탄 국토에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