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5일 진행한 서울시티투어 중 찍은 청계천의 정경이다.
민달팽이 유니온
산업화가 급속도로 이뤄지던 시절, 1960년대 즈음의 한국은 '빨리빨리' 경제 발전을 바라며 아주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반면, 그 노동자들이 살만한 집을 제공해야 할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은 판자촌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1966년 서울시 인구의 38%가 판자촌에 사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였다.
60년대 이후부터 강남 개발 등 대규모 도시 개발 정책과 부동산 투기가 활성화되면서, 청계천과 강남 등 서울 곳곳 판자촌에 살던 이들이 대책 없이 쫓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일자리는 서울에 있는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출퇴근 버스 한 대조차 제대로 다니지 않는 지역에 던져졌으니, 얼마나 울분이 차올랐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눈을 돌려 청계천을 바라보니, 그렇게 사람들을 치워버린 자리 위에 말끔히 서 있는 고층 빌딩과 도시의 어항이 된 청계천의 모습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청계천 지역은 커다란 빌딩숲이 늘어져 있지만, 구석마다 고시원과 쪽방이 숨어 있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는 그중 하나인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했던 화재 참사 당시의 이야기를 전했다. 국일고시원에는 창문 있는 방보다 4만 원 저렴한, 창문이 없는 '먹방'이 있었다.
소방 안전시설을 보강해야 하는 불법 고시원이었지만 건물주가 응하지 않고 있었다. 2018년 11월, 건물 안에서 불이 났고, 먹방에서 탈출구를 확보하지 못한 이들이 돌아가셨다. 7명이 죽고 11명이 다쳤다. 그들은 먹방에 살던 세입자였고, 비정규직 또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아현동, 남일당, 용산정비창, 그리고 두리반
이어서 투어에서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강제퇴거에 사람들이 저항하던 현장을 돌아봤다. 과거 용산역 앞에는 크고 작은 음식점과 가게들이 있었고, 아현역에는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으로 살던 월세방들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고층 아파트와 빌딩으로 변해 있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용산역 상인들의 일터를 밀어낸 자리에는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지어졌고, 매매 호가는 25억 원을 웃돈다. 아현역 바로 옆, 월세 20만 원짜리 셋방들을 부순 자리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신축 매매 호가는 15억 원에 달한다. 더 비싼 집을 지어 더 많은 개발이익과 시세차익을 벌어들이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폭력진압으로 쫓겨났다. 2009년 1월 용산참사와 2018년 11월 박준경 열사의 사망이 그랬다. 세입자를 위한 대책 하나 없는 퇴거 명령이 잇따르고,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강제집행이 벌어지면서, 존엄한 삶을 원했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누군가의 존엄을 훼손하고 쫓아낸 자리에 수십억짜리 집들을 짓는 것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이다. 혹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 그 비싼 아파트의 주민이 되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이 세입자를 함부로 추방하는 것을 용인하는 구조에서는, 우리는 결코 서울에서 차별을 철폐할 수도, 평등해질 수도 없다.
서울은 누구나 안정적으로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어야 한다. 그 변화의 시작을 도모하기 위해, 투어 참여자들은 용산정비창 정문 앞에 모여 '팔지 마! 공공의 땅!', '내놔라 공공임대'를 함께 외쳤다.
용산정비창은 50만m에 달하는 100% 공공부지인데,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땅을 민간 개발업자들에게 매각하여 높은 개발이익과 시세차익을 보장해주고자 한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빈곤사회연대, 민달팽이유니온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땅을 민간에 매각하지 말고 공공임대주택 확대 등을 추진해 도시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