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유족 정순자정순자씨는 아버지 대신 학살된 할머니를 추모하려고 3일 아침 ‘제주4.3 성산읍 희생자위령비’를 찾았다.
이봉수
'대살'은 학살을 면하려고 한라산 자락이나 일본 등으로 도피한 청장년들 대신 배우자나 어머니를 납치했다가 출두하지 않으면 처형하는 극악한 연좌제였다. 4.3 당시 성산포는 서북청년으로 구성된 특별중대가 주둔하면서 400여 명이 참살돼 죽음과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다크 투어리즘' 현장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제주4.3은 <한겨레> 기자인 허호준씨가 최근 발간한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라는 책 제목이 말해주듯 7년여 장기간에 걸쳐 자행된 국가폭력이었다. 그러나 제주는 온통 동백과 유채꽃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관광지로만 인식돼 제주 곳곳이 학살의 현장임을 아는 관광객은 많지 않다.
400여 명이 희생된 성산 터진목 학살 현장도 일출봉 옆으로 펼쳐지는 일출을 보기 좋은 장소로 유명할 뿐이다. 4.3 유족들은 지금도 고통받고 있지만 그 또한 남의 일이 돼 갈 뿐 아니라 가해 세력의 후예들이 수시로 상처를 헤집는다. 정순자씨도 '4.3 때 학살 주범인 서북청년단이 4.3평화공원에 온다는데, 항의하러 가고 싶어도 다리를 수술해 가지 못 한다'며 분개했다.
정씨는 할머니가 학살된 뒤 아버지마저 '빨갱이'로 낙인 찍혀 23년 동안 귀국하지 못하는 바람에 고아처럼 살았다고 한다. '뭘 하고 살았느냐'는 질문에 "살아시난 살았쥬"라며 금세 눈자위가 벌개졌다. 어릴 때부터 해녀가 돼 평생 물질로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