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그렇다 보니 한국이 시기별로 무엇을 주요하게 수출했는지를 살펴보면, 한국 경제의 흐름과 동시에 노동운동의 역사를 함께 정리할 수 있다. 당시 국가가 주력한 산업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경공업 산업의 현장에는 평화시장의 전태일과 여공들이 있었고, 1980·1990년대 중공업 산업의 현장에는 한진중공업의 김진숙과 박창수가 있었다. 각 시기를 대표하는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들은 모두 당대의 핵심적 수출품목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중공업에서 서비스산업, 오늘날 IT·4차 산업으로의 산업변화는 곧 노동자들의 집단적 이동을 전제로 했으며, 국가는 그것을 기획하는 주체였다.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반도체 등의) 첨단산업은 국가의 성장엔진"이라며 첨단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2026년까지 6대 첨단산업에 대한 550조 원의 민간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게 핵심 골자이다.
이에 전 부처가 첨단산업 육성의 기조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산업부는 첨단산업 투자 유치 계획을 발표하고, 국토부는 15개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 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첨단산업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대학 내 첨단산업 관련 분야 정원 증원과 지역대학에 첨단산업 관련 학과 신설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럴 때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라는 말로는 오늘의 경제현실을 진단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반도체 산업은 수출품목의 20%를 차지하고, 전체 GDP로는 8%를 차지한다. 반도체생산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시총 1, 2위 기업을 다투고 있다. 반도체산업에 필요한 부지건설산업과 전자제품 판매시장 같은 간접적인 요인까지 고려하면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율'은 단순히 GDP 8%의 숫자로만 헤아릴 수 없는 것일 테다. 그러니까 한국은, '반도체'로 먹고 사는 나라다.
나는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율이 높기 때문에 오는 경제적 위험요소를 지적하거나 식량위기 시대에 '반도체를 씹어먹고 살 것이냐'는 핀잔을 늘어놓고자 하는 게 아니다. 지금 국가가 반도체 산업을 핵심 미래산업으로 설정했을 때, 그곳으로 이동하고 배치되는 집단적 노동인구의 미래를 함께 상상해보자는 것이다.
산업역군 신화
오늘날의 전태일, 김진숙, 박창수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라는 명제가 만들어낸 '산업역군'의 신화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부터가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국가경제의 존망을 가르는 국가적 인재라고 하지 않는가.
반도체산업단지가 대규모로 조성돼 있고, 현재도 조성되고 있는 평택·기흥·화성은 청년들에게 기회의 땅이라 불린다. 유튜브에 청년, 평택, 반도체라는 키워드를 함께 검색하면 산업단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청년건설노동자부터, 반도체 생산직과 기술직 청년노동자들의 '노동인증후기' 영상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