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비용과 안전 모두 하청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겨버리는 원하청 행태에 분노가 인다. 사진은 탈의실부터, 거리가 먼 작업현장까지 이동하는 용으로 쓰고 있다는 한 직원의 세발 자전거 사진.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그래도 늦었지만 다행이다 싶었다. 두 달 동안 별다른 사고만 나지 않으면, 하청노동자가 트럭 짐칸에 실려 다니는 위험한 상황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원청과 노동부에 문제제기하고 언론에 알린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약속한 2월이 지나도 짐칸에 사람을 태우고 다니던 트럭 30여 대 중에서 안전장치를 설치한 트럭은, 당시 내가 알기론 3대에 불과했다. 대다수 하청업체는 3월 말이 다 되도록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하청노동자를 싣고 다녔다. 4월이 다가오자 업체들이 안전장지를 하지 않고 여전히 사람을 싣고 다닌 이유가 밝혀졌다. 트럭 짐칸 탑승은 금지했지만,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대신 하청노동자에게 '자전거를 사서 탈의실부터 작업현장까지 타고 다니라'고 한 것이다.
본래도 남성 노동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트럭 짐칸에 탑승해 작업현장으로 이동하는 노동자의 대다수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는 40대 후반 또는 50대가 많다. 트럭 짐칸에 안전장치를 설치하기로 합의해 놓고, 원청은 안전장치 설치를 위한 비용 지원은 나 몰라라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하청업체는 안전장치 대신 40~50대 여성 노동자들에게 사비로 자전거를 사서 타고 다니라고 한 것이다.
그 결과, 여성 노동자들은 졸지에 10만~20만 원 하는 자전거 구입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한다. 자전거를 탈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이제껏 자전거를 타보지 않은 여성 노동자는 당장 두발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특수 제작한 세발자전거를 30~40만 원 가량 주고 사야만 했다는 이야기다.
회사가 부담해야 할 안전 비용을 노동자 개개인에게 떠넘기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해서는 위험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트럭 짐칸 탑승은 사라졌지만, 위험은 사라지지 않은 채 익숙하지 않은 자전거를 타고 작업현장까지 가야 하는 여성노동자 개인에게 옮겨갔다. 그와 더불어, 사고가 나도 회사의 책임이 아닌 자전거를 탄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책임의 주체도 옮겨갔다.
하루아침에 수십만 원을 들여 억지로 자전거를 사게 된 데다, 서툰 자전거를 고생스럽게 타고 다녀야 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이제 위험한 트럭 짐칸 탑승을 문제 삼은 하청 노동조합을 원망하고 있다고 한다. 원망을 들어서라도 하청노동자의 안전이 지켜진다면 기꺼이 원망쯤은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비용과 안전 모두 하청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겨버리는 원하청 자본의 행태에 가슴 깊이 분노가 인다.
대우조선해양에서 하청노동자 트럭 짐칸 탑승은 사라졌다. 그러나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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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짐칸 탑승' 사라진 뒤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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