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주택가 길가에서 볼 수 있는 도시가스 계량기 모습이다
정록
지난 1월, 2월은 가구당 크게 오른 난방비로 많은 이들이 고통 받았다. 이미 오를대로 오른 물가에, 대출금리까지 치솟은 마당에 청구된 난방비는 정말 폭탄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올해 1월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작년 동월 대비 28.3%나 올랐다. 인상 전에도 한 겨울 가스요금은 10만 원이 훌쩍 넘곤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는 2분기 공공요금을 동결하겠다면서도 전기와 가스요금은 계속 인상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정부는 '에너지 바우처'를 확대하겠다고 하고, 야당은 국민들에게 에너지물가지원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다른 문제들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는 듯 보이는 여야지만, 에너지 요금 문제에서는 사실상 같은 입장을 취한 것이다. 요금 인상은 어쩔 수 없고, 취약계층을 지원하면 된다는 것이다.
언론들도 한목소리로 요금 인상의 불가피함과 취약계층 지원 필요성을 반복했다. 그 밑에는 에너지 공기업 적자 해소와 저렴한 요금이 에너지 낭비를 야기한다는 논리가 강력히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공기업이 일반 사기업처럼 적자를 해소하고 이윤을 남겨야 하는가?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낭비의 주범이 시민들인가? 저렴한 에너지요금은 시대착오적인가?
에너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부터 묻자
지난해부터 한전과 가스공사의 엄청난 누적 적자 문제가 불거졌다. 2022년 말 한전의 적자는 32조 원, 가스공사 미수금은 9조 원에 달했다. 언론들부터 난리가 났다. 지금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기업들이 오직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버티고 있다며, 에너지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정부의 정치논리가 경제를 왜곡한다며, 이제 에너지도 쓴 만큼 지불하는 '정상적인 상품'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상품이어야 하는가? 이는 에너지가 판매해 이윤을 남겨야 하는 재화여야 하는지 묻는 것이다. 유무형의 사회적 재화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데 다양한 자원이 소모되며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삶의 필수재로서 에너지와 이윤을 남기는 상품으로서 에너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에너지가 이윤을 남기는 상품이 된다면, 이를 생산하는 기업은 가능한 많이 생산해서 판매할수록 매출과 이윤이 커진다. 에너지 대량생산-다소비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사용하는 시민들은 이제 지불 능력에 따라 접근 가능한 상품이 된다. 아니, 필수재인 에너지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다른 소비를 줄이는 궁핍한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에너지는 의료, 교육, 교통처럼 일반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가 적용돼선 안 되는 대표적인 공공영역이었고 부족하나마 한국 역시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한전이 시장경쟁을 거부하는 독점이라서 문제인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공공성을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이다. 한전의 적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서 비롯된 적자인지를 정확히 가려내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의료, 교육, 교통, 복지 등에서 국가의 재정책임을 강조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일개 기업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을 책임지는 핵심적인 국가기관이다. 에너지 없이는 단 하루도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없기에 에너지는 필수재이자, 기본권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에 사회공동체가 함께 생산, 소비하고 관리하는 공공재로서 에너지의 새로운 과제를 확인하게 된다. '전체 에너지 수요감축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에너지 공기업 적자는 대기업 지원의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