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수학 문제집을 푸는 걸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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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이 들어 가고 싶니?' 문득 내 안에서 물음들이 떠올랐다. 책을 함께 읽고, 글쓰기를 가르치고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니 그걸 계속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맞는데, 해왔기에 하는 거 말고, 나로 돌아와 이후의 시간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내고 싶은가라는 조금 더 본원적인 질문이 스스로에게 던져졌다.
'해보고 싶은 것은 없었니? 해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가 될 만한 건 없을까? 혹은 나이가 들었기에 이제라도 해볼 수 있는 건 없겠니?'
이런 질문들이었다. '여전히 호구지책으로 돈을 벌어야 하지만, 이제라도 자신의 방향성을 잘 살펴가보는 건 어떻니?'라고 내 안의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 했다. 칼 로저스의 말처럼 인생은 불안정하고 확실한 걸 보장해 주는 게 아닌데, 우리는 늘 그 '안정'과 '확실'을 지향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지난 일년을 살아보니, 정말 인생이라는 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거구나 했다. 닥치면 나가서 도너츠도 튀기고, 크림도 넣고, 어찌어찌 살아지는구나 싶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또 살아지는 인생, 그렇담 내 노년의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런 내 안의 물음들을 가지고 찾다보니 전에는 보여지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바*, 알바 **에서 시급 알바만 찾던 내 눈에 다른 것들이 눈에 띄었다. 물론 앞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국가자격증 하나 따놓지 못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그래도 내가 할 만한 것들이 있었다. 되든 안 되든, 때로는 자격이 좀 안 되더라도 밑져야 본전이다 싶은 마음으로 이력서를 쓰고, 자소서를 썼다. 그러기를 한 달여 전화가 왔다.
3월부터 나는 일주일에 세 번 세 시간씩 지역아동센터에서 '돌봄 교사'로 일한다. 지금 하는 일들은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수학 문제집을 푸는 걸 도와주는 일이다. 그 일을 하게 됐다고 하자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우선은 그래도 빨리 구했네부터, 발바닥에 주사까지 맞을 정도였는데 육체적으로는 무리가 덜해서 다행이라는 반응, 그 정도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겠는가라는 우려에서, 그래도 그간 해왔던 경험이 아깝지 않은가라는 아쉬움까지 다양했다.
아이들 독서 논술도 아니고 수학 문제집 푸는 걸 도와준다니 이 또한 다른 방식의 호구지책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첫 날 오랜만에 본 어린 아이들과 정신없이 세 시간을 보내고 나서는데 참 마음이 편했다.
그 편한 마음의 정체가 뭐였는지는 나에게도 여전히 숙제다. 그저 이 나이에 그 아이들을 돌봐줘야 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굳이 내가 아닐 필요가 있을까, 뭐 이런 생각은 들었다. 자원봉사도 하는데, 돈도 주는데, 내 노년의 시작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건 노년의 시작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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