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인생 3기 (the third age)의 시작은 '자소서'부터
이정희
날숨의 시간
알바 자리를 잘리고 꼴랑 한 달치 알바비를 가지고 여유를 부리게 된 건 지난 일년간 달려왔던 내 자신의 궤도를 새로이 점검해보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마치 요가의 동작처럼 들이쉰 숨을 내뱉으며 긴장을 풀며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불과 몇 년 전, 아이들이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갈 즈음 아이들을 키우는데 전력해왔던 나는 방자하게도(?) 세상에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했었다. 마치 그런 나의 오만한 생각에 하늘이 응답한 듯 롤러코스터와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리고 낼 모레 육십이라며 다 산 것처럼 굴던 나는 본의 아니게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인스타에서 봤던 글귀 중에 그런 게 있다. 아흔 넘은 노인의 고백이었다. 환갑이 되도록 열심히 일하고 퇴직을 하게 된 노인은 그 후로 내내 허송세월을 했다고 후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음을 기다리며 지나온 세월이 인생의 1/3이 넘는 삼십여 년이나 되었다니. 두 아이들이 제 몫을 하게 되자 인생 다 산 것처럼 굴던 나 역시도 노인과 다르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그 몇 십 년을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며 사셨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100세를 사는 게 무색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길고 긴 노년의 시기는 초로기와 스스로 자신을 돌보기 힘든 노쇄기로 다시 나뉘어졌다. 영국의 사회철학자 피터 라스렛(Peter Laslett)은 1989년 발간한 그의 책 <인생의 신선한 지도>에서 직장에서 물러나 거동이 불편해지기까지를 인생의 제 3기(the third age), 자기 성취(personal achievement)의 시기라고 정의했다. 즉 예전과 달리 건강하게 오래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의무'를 넘어 개인적 성취와 만족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남들이 평생 일하고 여유롭게 퇴직할 위치인 것과 달리, 맨 땅에 헤딩하듯 호구지책이라는 짐이 얹혀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거두어야 할 '자식'도, '남편'도 없으니, 정말 나 하나 잘 챙기면 되는 처지였다. 작년 일년 동안 허겁지겁 '호구지책'을 면하기 위해 달려왔다면, 이제 이완의 시간을 거치며 조금 더 인생의 3기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장황했지만, 나는 도너츠도 잘 튀기고, 빵에 크림도 잘 넣지만, 그게 내 최선의 '달란트'일까 하는 것이다. talent, 달란트는 거래할 때 화폐의 단위로 쓰이기도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부여하신 재능이나 능력을 뜻한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각 개인이 저마다 지닌 '달란트'가 있다는 말은 어쩐지 그럴 듯하게 여겨졌다.
남은 1월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추수린 나는 2월 들어 본격적으로 나의 '달란트' 탐구에 들어갔다. 말이 거창하니 달란트 탐구지, 실직자로서 워크넷, 알바*, 알바** 등에 등록하고, 날마다 올라오는 취업 정보와 구인 정보를 섭렵하고 신청, 응시하는 과정이었다.
비록 나이는 낼 모레 육십이지만, 아직은 사회적으로 내가 쓰임이 될 만한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새삼스레 이 나이에 이력서도 쓰고, 자기 소개서도 쓰는 상황이 벌어졌다. 요즘 취업 전쟁에 내몰린 젊은 세대들 사이에 자조적으로 도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른바 자소서를 100장쯤 쓰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쯤이야 일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