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11월 12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상하이 조선인거류민회장 이갑녕 저격 사건. 이갑녕은 일본 외무성의 촉탁으로 활동한 대표적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
조선일보
중일전쟁 여파로 피난길에 오르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군은 마침내 국민당 수도였던 난징까지 점령했다. 국민당의 피난 명령에 따라 난징에 있던 민혁당 본부도 피난길에 올랐다.
11월 24일 김원봉 등 민혁당 수뇌부를 비롯한 90여 명 대가족이 민간 선박 5척에 나눠 타고 한커우(漢口)를 향해 출발했다. 배는 주장(九江)-이창(宜昌)-한커우-완현(萬縣)-스바오사이(石寶賽) 등을 거쳐 이듬해 3월 14일에 이르러서야 충칭에 도착했다.
배에는 민혁당원이 아닌 일반 동포들도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민혁당원 임득산이 운영하는 만년필 상점 직원 이초생이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배가 한커우에 잠시 정박하고 있던 12월 17일경 문일민은 이초생이 탄 배로 넘어와 갑판으로 그를 불러냈다. 그리고 "중국 국민정부의 원조를 받고 있는 민혁당에 가입하면 신변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며 넌지시 입당을 권유했다. 이초생은 문일민의 권유에 설득되어 민혁당에 입당 원서를 제출했다.
이후 김원봉 등의 주요 간부들은 한커우에 남아 본부를 설치했고, 문일민 등 나머지 인원은 다시 충칭을 향해 출발했다. 1938년 3월 14일 충칭에 도착한 이들은 곧바로 민혁당의 지부로서 충칭구(重慶區) 당부(黨部)를 설치했다. 구 당부는 중앙에 속하는 지방최고기관이었다. 이때 문일민은 민혁당 입당 관련 실무를 담당했다.
충칭구 당부는 세포조직으로 소조회(小組會)를 결성하여 국제정세 및 시사 문제를 토의하는 한편 각종 시위를 주도했다. 1938년 5월 1일 메이데이를 맞아 충칭시 정부가 관민합동으로 주최한 메이데이 시위에 민혁당 당기를 세우고 참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시위에 참여한 문일민 등의 민혁당원들은 아래와 같은 구호를 부르짖으며 사실상 항일시위를 전개했다.
"중·한이 합작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는 데는 단결의 힘이 필요하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내라!"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내라!"
"일본 타도!"
"간첩을 괴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