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닦는 화물연대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고 그들이 '노동 3권'에 대해 모르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시험에 종종 출제되는 내용이라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노동 3권 즉, 단결권과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헌법적 권리라는 점은 중학생 정도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대입을 위한 수험 지식으로서 앵무새처럼 기억할 뿐 노동 3권의 가치와 실효성 등에 대해선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듯했다. 심지어 단결권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운영할 권리이며 단체 행동권이 파업권과 동의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명색이 스물이 코앞인 고등학생들인데, 노동조합의 대표가 사용자와 교섭을 벌이는 방법을 알기는커녕 단체 교섭이 무슨 뜻이냐고 반문하는 아이도 있다. 하긴 근로계약서조차 쓸 줄 모르는 그들에겐 난망한 일이다. 대입에 사활을 건 학교에서 노동교육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무고한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파업은 용납될 수 없어요."
이 또한 세 명의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건넨 말이다. 그러나 파업이란 본디 일손을 놓아 사회에 불편을 끼쳐 사용자를 압박하려는 게 목적이다. 파업으로 아무도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용자가 굳이 노동자들과의 대화에 나설 리 만무하다. 이런 기본적인 파업의 원리조차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알리고, 정치권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될 텐데, 노동조합이 왜 자꾸 애꿎은 시민들을 볼모로 파업만 일삼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의 이야기는 갈수록 태산이었다. 노동자들에겐 파업이 마지막 몸부림이다. 언론과 정치권을 향해 호소해도 아무런 대응이 없다 보니, 함께 어깨 겯고 길거리로 나서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해도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좋아서 파업하는 노동자는 없다는 말조차 허공에 흩어졌다.
학생들에겐 위험한 단어 '노동' '파업'... 뿌리깊은 오해
전태일의 불꽃 같았던 삶도 그들에게 아무런 교훈을 주지 못한 듯하다. 비참한 노동자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제 몸을 불살랐던 그의 희생을 기린다면서도, 지금의 파업은 별개라고 말하는 그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되레 전태일이 살던 시대와 지금은 엄연히 다르다며 반론한다.
그들에게는 전태일조차 수험용 지식일 뿐인 걸까. 실제 전태일도 당시 곳곳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중학교도 진학하지 못한 그가 독학으로 근로기준법을 익힌 것도 그래서였다. 오죽하면 '대학생 친구 한 명'을 소원했겠는가. 노동조합의 결성조차 여의치 않던 엄혹한 시기, 결국 그는 분신을 통해 목소리를 냈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노동자들을 파업의 외길로 내몬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선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화물연대 운전자들이 파업을 벌인 이유를 아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아이는 없었다. 이유야 어떻든 '파업은 나쁜 짓'이라는 편견이 강고하게 아이들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저(자기)들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또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을 옹호하면서 아이들이 건넨 또 하나의 이유다. 정작 최저임금을 전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먹고 살 만한 이들이 되레 설친다는 거다. 정부의 '귀족 노동자'라는 표현이 조금 지나친 면은 있지만, 아예 틀린 말도 아니라며 짐짓 두둔했다.
아이들의 편견 어디서 왔을까...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