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11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희훈
수능 한국사 영역 시험에는 '대략 난감'한 별칭이 있다. '국적 판별 시험'이라는 것. 절대평가 방식인 데다가 워낙 쉬워서 붙여진, 언뜻 조롱처럼 느껴지는 이름이다. 50점 만점에 30점을 못 넘기면, 대번 아이들은 대한민국 국적을 박탈해야 한다며 낄낄댄다.
누워서 떡 먹기라는 한국사 시험, 그중에서도 쉬운 문제가 있다. 초등학생 받아쓰기보다 더 쉽다고 하는 것들이다. 빗살무늬 토기 사진을 보여주고 신석기시대 농경의 시작을 찾는 것이나, 세종대왕의 업적이 뭐냐는 질문에 훈민정음의 창제를 고르는 문제 등이 그렇다.
그중에도 압권은 6.25 전쟁에 관련된 문제다. 대개 전쟁 전후의 상황이나 분단의 고착화를 다룬 지문을 제시한 다음 관련된 내용을 고르는 문항이 출제된다. 이따금 전황을 시기순으로 배열해놓거나 대동강 철교가 폭파된 사진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답률은 늘 90%가 넘는다.
문제의 내용은 달라도 정답은 한결같이 인천상륙작전이다. 제시된 지문과 선지가 뒤바뀌어 있을지언정 6.25 전쟁을 다룬 문제에서 인천상륙작전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쟁을 판도를 일거에 바꾼 사건이라는 평가 때문인지, 6.25 전쟁에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닌다.
6.25 전쟁 = 인천상륙작전?
시험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인천상륙작전은 6.25 전쟁에서 떠올리는 사실상 유일한 지식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됐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다. 정전협정이 조인된 날도 모르는 아이가 태반이다.
얼마 전 한 아이는 시험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6.25 전쟁 관련 문제를 '쉬어가는 코너'라고 표현했다. 오로지 인천상륙작전만 알면 된다는 거다. 이는 따로 시간을 내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내용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며 웃어 보였다.
인천상륙작전이 필수적 역사 지식이 되다 보니, 덩달아 작전을 이끈 맥아더를 모르는 아이가 없다. 아이들에게 맥아더는 미국을 넘어 서양의 역사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심지어 그를 '전쟁의 참화 속에 대한민국을 구한 파란 눈의 영웅'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극동군 사령관으로서 일제와 전쟁을 벌인 인물이지만, 아이들이 아는 거라곤 오로지 인천상륙작전을 이끌었다는 것뿐이다. 그가 일왕으로부터 항복 문서를 받았고, 일본 점령군의 사령관이 됐으며, 전범재판을 주관했다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도 관심 밖이다. 전쟁의 최고 책임자인 일왕과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장을 면책해준 이가 맥아더다.
나아가 전범국가인 일본 대신, 식민지였던 한반도에 38도선 획정을 소련에 제안해 전쟁과 분단의 단초를 제공한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총독부 건물에 일장기를 내린 뒤 성조기를 올리고, 해방 직후 포고령을 반포해 미군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임을 명시한 이도 맥아더다. 그는 건국준비위원회는 물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주적 활동마저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반포한 포고령으로 미군의 직접 통치가 시작되었다. 미군정은 일제강점기 일제에 부역한 친일 관료와 경찰, 군인 등을 단죄하기는커녕 그대로 고용했고, 이는 극심한 갈등과 민심의 이반을 불러온 원인이 됐다. 우리에겐 친일 청산의 대의와 열망을 짓밟는 처사였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이후에도 우리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그의 행태는 계속된다. 북한군을 압록강까지 몰아냈지만, 이는 되레 중국군의 개입을 불러왔다. 어쩔 수 없이 후퇴하게 되자 중국과의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며 중국 연안을 봉쇄하고 원폭 투하까지 고려했다.
불과 5년 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강력한 효과'를 떠올렸던 걸까. 당시 트루먼 미국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되어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라는 그의 퇴임사가 미화될 이유가 하등 없다는 이야기다.
맥아더의 공과를 따져보는 것은 6.25 전쟁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를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하는 건, 자칫 동족상잔의 비극을 선과 악의 싸움으로 단순화시킬 우려가 크다. 전쟁으로 인해 분단이 고착화됐고 반공주의가 득세하며 친일 잔재의 청산은 요원해졌다. 요컨대, 맥아더는 반공의 신념이 확고했던 충직한 미국 군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힘을 빼도 모자랄 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