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육군강무학교 제17기 동학록>에 수록된 생도 시절 문일민의 사진
독립기념관
윈난강무학교의 커리큘럼은 일본 육군사관학교의 그것을 모방했는데, 일본 육사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중국인 유학생들이 교관으로 활약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체조와 구보를 한 뒤, 6시간 수업과 2시간 훈련을 마치고 저녁에는 자습을 하는 게 하루 일과였다. 야간에는 불시에 긴급집합훈련도 이뤄졌다. 학과는 보(步)·기(騎)·포(炮)·공(工) 4개 병과가 있었고 학습 기간은 1년에서 2년 반 등 유동적이었던 것 같다.
군사학교인 만큼 군사교육이 중점이 되었는데 생도들은 군사학·지리학·축성학·경리학 등을 익혔다. 중화민국 수립 이후로는 전술학·병기학·공병 지뢰매설(工兵布雷)·모의훈련(沙盤敎習) 등이 추가됐다. 또 산수와 일본어·영어·프랑스어 등의 보통학과 교육도 실시됐다.
문일민 후손의 증언에 의하면 이 당시 문일민은 체력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한 적이 있다 한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밤에 혼자 나가 철봉(鐵棒) 운동에 매진하는 등 열성적으로 훈련에 임했다고 전해진다. 아마 이때 철봉 운동만큼은 확실히 익혔던 모양이다. 훗날 흥사단 입단시 그가 작성한 이력서에는 '철봉'을 특기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일민은 이곳에서 신식 군사교육을 받은 후 1924년 10월경 졸업한 것으로 보인다. 윈난강무학교를 졸업한 한인 청년들의 진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국민혁명군(國民革命軍) 등 중국군에 입대하여 활동하거나, 상하이 임시정부 혹은 만주·러시아 지역의 한국 독립운동 진영으로 귀환하는 경우였다.
이제 문일민 앞에는 새로운 선택지가 놓여있었다.
- 8부에서 계속 -
[주요 참고문헌]
1) <동아일보>, <신한민보>
2) <문탁진 구술>
3) 在上海 日本總領事, <閔廷植 救出後에 있어서 不逞鮮人의 對策宣傳에 관한 件>, 1924.12.27.
4) 배숙희, <中國 雲南陸軍講武堂與韓籍學員>, 《中國史硏究》 56, 중국사학회, 2008.
5) 조범래, <중국 쿤밍[昆明]의 운남육군강무학교 제17기동학록>, 《월간 독립기념관》 2006.9.
6) 나창주, <새로 쓰는 중국혁명사 1911-1949>, 들녘, 2019.
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7, 1976.
8) 한상도, <韓國獨立運動과 中國軍官學校>, 문학과지성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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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전공 박사과정 대학원생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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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임시정부의 주선으로 중국 군사학교에 입학한 문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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