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교수가 쓴 <조국의 법고전 산책>
오마이북
함께 읽고 토론할 책은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쓴 <조국의 법고전 산책>(오마이북)이다. 다분히 의도적인 선정이었다. 우리 현대사 속 인물과 사건들의 이면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아이에게 서양의 법고전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했고, 무엇보다도 '주홍글씨'로 각인된 저자 조국에 대한 또래 아이들의 평가도 직접 전해 듣고 싶었다.
말이 독서 토론이지, 서로의 주장에 맞장구치고 살을 붙이는 대담 형식으로 흘렀다. 대체로 나는 질문했고, 그는 답했다. 그는 책을 통째로 외운 듯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 400쪽이 넘는 책 속 관련된 부분을 곧장 펼쳐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억을 되짚기 위해 곳곳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아 너저분한 내 책과 비교가 됐다.
대신 그에겐 두툼한 노트가 책 옆에 놓여 있었다. 밑줄 그어가며 읽다가 인상 깊게 다가온 문장을 따로 필기한 것이다. 다 읽고 난 뒤의 복습용이기도 하지만, 다른 법고전의 내용과 대조해보는 맛이 쏠쏠하다고 했다. 실상 그 문장들이 화두였고, 그것에 대한 서로의 해석이 토론의 전부였다. 재미있는 건, 그와 내가 화두로 삼은 문장들이 대동소이했다는 점이다.
참고로, 목차와 상관없이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장 자크 루소, 존 로크, 존 스튜어트 밀을 지나 루돌프 폰 예링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이 활동했던 근현대 시기까지 출간된 열다섯 권의 법고전을 다루고 있다. 주제 역시 사회계약과 사법 통제, 자유와 권리, 시민불복종과 평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책 제목의 첫머리로 내세운 조국 전 장관에 대한 평가로 말문을 열었다. 그가 정치인이기 이전에 법학자였다는 점을 잠깐 잊고 있었다며, 그는 이 책이 사람들에게 조국 전 장관의 정체성을 새삼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언뜻 촉망받는 법학자에서 '내로남불'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힌 현실에 대한 회한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이 책 제대로 읽으려면 저자 '조국' 이름 지워야"
다음은 한 시간 넘게 이어진 그와의 독서 토론을 축약한 내용이다. 책 속 손꼽은 문장들도, 바라보는 관점도 대개 서로 엇비슷했다. 그의 참신한 질문과 명징한 주장을 듣다 보면, 교사인 나 역시 한 뼘씩 성장하는 걸 느낀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가르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 : "세간에는 조국 전 장관이 검찰 권력에 보복을 당한 거라는 여론이 적지 않다.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들었다 되치기당했다는 뜻이다. 일부 유죄를 받았지만, 적어도 그와 가족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가혹하다는 견해에는 상당수가 동의하는 듯하다."
학생(학) : "스스로 진보 세력임을 자임해온 그의 업보라고 생각해요. 도덕성이 기반인 진보 세력에겐 티끌만 한 부정도 부풀려지기에 십상인데, 스스로 너무 나이브하지 않았나 싶어요. 사람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이야기도 너무 자주 듣다 보니 식상해하는 것 같고요."
나 : "조국 전 장관은 '너를 죽일 수 없는 것이 결국 너를 더 강하게 할 것이다'는 니체의 말을 믿고 견디며 쓴 글이라고 했는데, 이 책에 대한 총평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학 : "그의 자성과 자책을 수용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읽는 내내 '조국 사태'의 편견이 끼어들면 오독할 우려가 있다고 봐요. 그냥 원래 자리로 돌아간 법학자가 법고전을 읽고 쓴 강의록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싶어요."
아이는 책 제목의 조국이라는 두 글자가 거슬린다고 했다. 그의 이름을 내걸어 책이 더 많이 팔릴지는 몰라도 정독하는 데엔 방해가 될 거라고 꼬집었다. 그래선지 토론 도중 '조국 사태'와 관련된 이야기가 언급될 때마다 그는 화제를 딴 데로 돌리려고 애를 썼다.
"법죄의 유일한 척도는 사회에 끼친 해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