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정누리
하지만 난 과자나 데우자고 15만 원짜리 기계를 산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해보자. 내가 요리를 망친 이유는 너무 빨리 결과를 보려고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자레인지형 사고방식'에서 '오븐형 사고방식'으로 바꿔보자. 겉에서부터 차근차근, 속까지 은근히 스며들게.
그날 나는 손질된 생닭을 사왔다. 우유에 2시간 정도 푹 담가 잡내를 없앤다. 올리브유와 소금으로 정성스럽게 염지한다. 20분 정도 재운 뒤 스텐망에 종이호일을 깔고, 그 위에 차곡차곡 염지 닭을 올린다. 후추를 솔솔솔, 그 다음 180도에 15분씩 뒤적거리며 반복. 완성! 완벽한 치킨이다.
프랜차이즈점보다 풍미 있는 치킨이다. 식탁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는다. 집에서 해먹는 로스트 치킨이라니, 정말 근사하다. 단톡방 친구들은 이젠 닭집까지 차렸냐며 박수를 쳐준다.
어쩐지 가슴이 찡해진다. 내가 원하던 그림이다. 최고급 재료를 쓴 것도, 요리 실력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조리 도구 하나 들였다고 식탁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생고구마도, 잔기지떡도, 먹다 남은 족발도 에어프라이어만 들어가면 새것이 된다. 이 도구의 매력은 '소생'이다.
어쩌면 우리도 새우깡 아닐까. 지금은 비록 세월을 좀먹어 흐물흐물하지만, 언제든 환경만 바뀐다면 곧바로 뜨겁고 풋풋해질 존재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를 탓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답은 재료가 아니라 환경에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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