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 산재사망 사고 후 노동자들의 요구지난 10월 21일 평택역에서 spc 파리바게뜨 평택공장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제에서 평택공장 노동자들이 요구현수막을 들고 있는 모습
공공운수노조
두 노동자는 가족에게 아침햇살과 같은 자식이었다. 취업했다고 양복을 입고 애교를 부리는, 엄마에게 늘 다정한 아들이었다. 엄마 생일엔 늘 미역국을 끓이며, 자기를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믿음직한 딸이었다. 이젠 다시 동영상으로 인사하는 아들은 없다. 미역국을 끓일 딸도 없다.
두 노동자는 모두 끼임 사고로 사망했다. 어두침침한 발전소, 석탄더미 속에서 컨베이어가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느라 수없이 고개를 컨베이어에 들이밀어야 했다. 10여 kg의 재료들을 섞어 반죽을 넣어 돌리는 교반기가 앞치마를 계속 빨아 당기는 위험 속에서 더 빨리, 많이 반죽해야 했다. 안전보다 생산이 먼저인 공장안, 컨베이어도 교반기에도 안전장치는 없었다.
두 노동자는 위험한 상황에 비상정지 버튼을 눌러줄 동료 없이 혼자서 일하다 사망했다. 발전소 컨베이어는 수 키로를 한 번에 움직인다. 홀로 그 긴 거리를 점검했다. 2인 1조는 매뉴얼에도 없었다. 그 후로도 회사는 그 작업은 2명이 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야간엔 더 적은 인원이 많은 물량을 쳐내야했다. 피곤하고 힘들어서 사람들이 피하는 작업이었다. 회사가 말하는 2명은, 2인 1조가 아니라 그 업무의 전체인원이었다.
사고 즉시 누군가 풀코드를 당기고, 비상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면 여전히 '절대반지(김용균님이 돌아간 후 도착한 택배에 들어있던)'를 끼고 있고, 친구와 '부산여행(사고 당일 친구와 부산으로 여행을 가기 위해 모든 예약을 마쳤다)'을 즐겼을 것이다.
두 노동자를 삼킨 발전기와 교반기는 노동조합과 언론의 질타에 의해 겨우 멈췄다.
사고가 신고된 후 출동했던 119는 그냥 돌아갔다. 이미 사망한 경우는 119가 아니라 장례식장 차량으로 이송해야 한다. 고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았고, 고인을 옮기라는 지시를 받아야했던 노동자들은 그 다음날 다시 그 기계와 마주하고 일을 해야 했다. 단지 사고가 난 동일한 기계와 공정만 멈추라는 알량한 지침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