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활동가사 창작을 위해 한국사 수업 때 받았던 인상을 짦막하게 정리해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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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걱정은 두 가지의 이유로 해결됐다. 첫 번째는, 1947년부터 약 7년간 제주는 피바다였고 엄청난 광풍이 불었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들의 삶이 있었을 것이라는 4.3 유족 선생님의 강의 내용이 마음에 담겼기 때문이었다. 그분의 강의가 있었던 날 나는 숙소로 돌아와 1시간이 넘도록 통곡을 했었다. 그러면서 더욱 창작의 의지를 굳히기도 했다.
연수가 끝난 뒤에도 약 3주 동안 제주에 머물면서 천천히 바다와 산의 숨결을 느꼈다. 그러면서 차츰 극의 내용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실마리가 풀렸다. 역사적 배경을 4.3으로 두고 그 안에서 그들이 살아갔던 모습을 최대한 담백하게 그려보면 아이들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는 역할의 배정이었다. 등장인물 중 악역이 없도록 설정하면 그나마 아이들의 내면이 무의식적으로 상처받는 것은 면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신 해당 내용을 3인칭 시점으로 만들기로 했다. 노래 중에 서사로 등장하거나 내래이션의 상황 설명 등으로 대신하기로 한 것이다.
가장 먼저 '오프닝넘버' 악곡 창작에 착수했다. 뮤지컬의 전형적인 형식에 의하면 오프닝넘버는 가장 커다란 무대가 된다. 극 전체의 서사를 보여주기도 하고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참여해 합창을 하기도 한다. 오프닝넘버가 구성이 되면 사실 뮤지컬 전체의 절반을 완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오프닝넘버인 <사건, 사람, 소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부분은 4.3의 서사가 담겨있다. 두 번째 부분은 참혹한 상황을 그리는, 가사 없는 표제적 음악으로 시작하며 이어서 시민들이 당했던 고난에 대해 노래하는 부분이 나온다. 세 번째 부분은 자유와 평화를 원하는 제주 시민들의 염원을 표현했다.
작곡의 시작은 3월에 했으나 불과 1주일 전인 10월 12일에 전체 반주가 완성됐다. 이제 40여 명의 목소리를 녹음해야 한다. 녹음은 학교 방송실에서 싸구려 장비로 소박하게 진행된다. 아이들은 이 과정을 가장 재미있어한다. 마치 가수가 된 것처럼 한껏 분위기를 잡아보기도 하고, "에이, 에스, 엠, 알"을 마이크 앞에서 속삭이며 키득거리기도 한다.
악보를 잘 보지 못하고 음을 쉬이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완성된 반주 위에 나와 한 학생의 목소리를 넣어 가이드판 녹음본을 만들어 배포했다. 아래는 그 영상이다. 악보와 가사가 함께 나온다. 아마추어 선생이 아마추어 학생과 함께 작업하는 보잘것없는 소품이니 부디 음악적 평가보다는 역사 알기와 평화 찾기에 대한 염원을 발견해 주시기를 바란다.
앞으로 몇 편의 기사를 더해 약 10곡 정도의 창작곡을 소개하는 형식을 빌려 4.3 당시 어떤 일이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대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동시에 아직도 미완성인 5개의 곡을 기한 안에 완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오늘(10월 17일)부터 우리는 제주도에 4박 5일을 머물면서 통합기행을 한다. 야영을 하고, 한라산을 걸으며, 4.3의 발자취를 밟을 것이다. 나는 아직 시작하지 못한 마지막 합창곡을 쓰기 위해 빈 오선지 몇 장을 챙겨왔다. 제주의 수많은 신들과 자연의 숨결이 부디 훌륭한 영감을 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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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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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했다"... 제주4.3이 학생 창작뮤지컬로 탄생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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