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허드슨 강변에서 만난 제자 가족과 함께 (2004)
박도
반갑고 고마운 일
이제 저 세상에 가도 조금도 서럽지 않은 이즈음이다. 나는 팔자가 드센 탓인지, 최근 따라 부쩍 바쁘다. 엊그제는 외장 하드에 2년 째 잠자고 있던 원고를 어느 출판사가 출판을 해주겠다고 해 서울로 가서 계약을 체결했다. 어제오늘 그 원고를 송고 전 마무리 퇴고로 정신이 없이 원고를 다듬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졸업한지 40년이 지난 제자가 부인을 모시고 내가 사는 원주 치악산 밑 동네까지 오겠단다.
<논어> 제1권 제1장 '학이' (學而)편 첫 머리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
하지만 이즈음 내 벗들 가운데는 이미 북망산에 갔거나 요양원 등에 가 있는 친구들이 많다. 이 조락의 계절에 40년 전 제자가 부인과 함께 먼 곳을 찾아오겠다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인가.
내 지난 인생을 때때로 뒤돌아보면 후회투성이로 성능 좋은 지우개로 죄다 지워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 가운데 33년의 교사생활만큼은 무척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교사초기 때, 교직은 인기가 바닥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을 잘 참고 지낸 탓으로 늘그막에는 남에게 아쉬운 말 하지 않고 매달 또박또박 나오는 연금으로 입에 풀칠은 하며 지내고 있다.
그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나는 교단을 떠난 뒤 제자들의 도움을 엄청 많이 받고 있다. 내가 이제까지 작가로, 기자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외에 흩어져 사는 수많은 제자들이 내 작품과 기사를 열독해 주기 때문이다.
한 제자가 졸업한 뒤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고교 졸업 20년 만에 모교로 찾아와서 나에게 미국 뉴욕 허드슨 강변의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하지만 영어로 "화장실이 어디입니까?"도 말할 줄 모르는 국어교사가 어떻게 그 청을 받아들일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