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크레인참사 1주기2018년 5월 삼성중공업 크레인참사 1주기 추모 분향소 앞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난 9월 5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한 명이 또 노동재해로 목숨을 빼앗겼다. 9월 1일 아침 7시 15분께 작업해야 할 블록 위치를 확인하러 갔다가 발이 미끄러져 이동 중이던 정반 사이에 끼이는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4일 만에 그만 돌아가신 것이다. 지난 3월 이어 대우조선해양에서 올해 두 번째로 발생한 중대재해다. 역시 하청노동자, 그 중에서도 재하청 물량팀에서 용접을 하던 여성노동자였다.
7시 15분이면 작업 시작 45분 전인데, 고인은 왜 그렇게 일찍부터 작업할 블록을 확인하러 갔을까? 작업은 8시에 시작하지만, 7시면 출근해 작업장으로 나가 일 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대다수 하청노동자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지만, 하청노동자의 위험한 노동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하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호소하며 51일 동안 파업투쟁을 했다. 파업을 통해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구조와 인력난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으나, 핵심 목표였던 임금인상에는 실패했다. 그 결과, 조선소에서는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게 된 하청노동자들이 계속 일터를 떠나고 있다.
조선소 품질보장은 하청 본공 숙련 노동자들
더욱 큰 문제는 심화되는 인력난이 그동안 한국 조선업을 떠받쳐 온 하청노동자 고용구조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조선업은 하청노동자가 직접 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하청중심 생산체제'였다. 그런데도 세계 제일의 품질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본공'이라고 부르는 하청업체 상용직 노동자들이 조선소 생산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이들은 조선소에서 20~30년 일해 온 숙련노동자였다.
그러나 불황기 임금하락으로 인해 조선소에서 일해서는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 숙련노동자들이 떠나고 있다. 현재의 저임금으로는 본공 숙련노동자를 구할 수가 없다. 그러자 원청과 하청업체는 임금을 올려줄 생각은 하지 않고, 부족해진 노동자를 물량팀, 아웃소싱 등 다단계하청 고용으로 채우고 있다.
다단계하청 고용은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한다. 다단계하청일수록 4대보험 가입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일하다 다쳐도 산재로 치료받기가 더 힘들고,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급여를 받기 어렵다. 어디 그뿐인가. 고용계약은 대부분 한 달, 두 달짜리 단기계약으로 언제든 쉽게 해고될 수 있다. 일이 없어 쉬어도 휴업수당은 언감생심, '무급대마치'가 일상이다. 하청노동자 투쟁으로 한두 달 단기계약을 최소 1년 단위 계약으로 바꾸고 휴업수당도 지급하게 만들었는데, 최근 물량팀과 아웃소싱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노동자 권리가 다시 후퇴하고 있다.
다단계하청 고용은 위험의 외주화를 심화한다. 물량팀, 아웃소싱 노동자일수록 돈과 직결되는 작업량이 안전보다 우선될 수밖에 없다. 1차 하청인 본공 노동자들이 그나마 법이 정한 월 2시간 안전교육을 받을 때도, 물량팀 노동자는 교육에 참석하지 않고 계속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다단계하청 노동자는 원청의 안전시스템은 물론이고 하청업체의 안전관리 영향권 밖에 존재한다. 원청이 아무리 수백억 원의 예산을 안전에 투여해도, 하청업체 안전관리를 강화해도 중대재해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단계하청 고용이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