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관 전 행자부 장관(가운데), 왼쪽 이시종 민화협 사무차장, 오른쪽 김병기 심사위원.
민화협
추억의 장소
지난 18일, 서울 종로1가 한 밥집에서 롯데장학재단 허성관 이사장 퇴임 송별연에 참석했다. 시골의 한 서생이 그 모임에 초청받은 것은 민화협-롯데장학재단 독립유공자 후손장학사업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를 더듬더듬 찾아가자 바로 60년 전인 1960년대 초 고교시절 내가 신문배달을 했던 동아일보 종로보급소 자리였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 시절을 뒤돌아보게 했다.
그날 약속시간 정각 12시가 되자 주빈인 허성관 이사장이 도착하셔서 바로 내 앞자리에 앉았다. 그새 그분으로부터 여러 차례 식사 대접을 받아 낯익은 처지였다. 하지만 나는 그날따라 장소 탓인지 고교 시절에 본 어느 할아버지를 떠올리케 했다.
1960년대 초 당시 나는 동아일보 종로구 누하동 배달원이었다. 그 동네 어귀 오거리에 군고구마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분은 당시 70대 할아버지로 누하동 오거리 어귀에서 드럼통 군고구마 화로 안에 연탄불을 피운 뒤 고구마를 구워 동네 사람들에게 팔았다. 그 할아버지는 구운 고구마가 얼른 식지 않게, 또는 당신 손이 찬바람에 곧지 않게 군용 담요로 화로를 덮고는 그곳에 손을 넣고 추위를 견디며 지냈다.
그 군고구마 할아버지와 가장 친한 이는 그 동네 신문배달원들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 신문 배달원의 이름 대신에 "동아야" "조선아" "한국아" "경향아"라고 불렀다. 우리들은 신문을 독자 집 대문 틈으로 넣다가 손이 몹시 시리면 그 군고구마 할아버지 화덕으로 가서 잠시 손을 녹이고는 다시 배달했었다.
그때 마다 할아버지는 전혀 싫어하는 내색 없이 담요 속에서 당신의 손을 빼고는 그 자리를 우리들의 손을 넣게 했다. 그러면서 때때로 당신 군고구마를 맛보여 주었는데 꿀맛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늘 털모자를 썼는데 그 후덕한 인상과 인심이 아련하다. 60년이 지난 오늘까지 가물가물 남아 내 바로 앞의 허성관 이사장 얼굴에 겹쳤다. 내눈에는 허 이사장님이 영판 그 후덕한 군고구마 할아버지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