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에서 아들과 채소전을 꾸리는 상인이 직접 재배한 옥수수를 손질하고 있다.
박진희
"아들, 오천 원이 필요해."
지인과 헤어지고 공주 오일장이 열리는 공주산성시장에 들렀다. 오일장이 열리는 때마다 둘러보는 골목에 들어서니, 채소 파는 가게 앞에서 집채만큼 옥수수를 쌓아놓고 껍질을 벗기는 현장이 목격된다.
농사지은 옥수수를 팔러 나온 난전의 아주머니는 아들과 함께였다. 껍질째 팔아도 될 일인데, 일일이 껍질을 벗기고 계셨다. 정성 어린 손길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손님이 옥수수 한 소쿠리를 달라며 만 원짜리 지폐를 내자, 아주머니는 아드님에게 "아들, 5000원이 필요해!"라며 거스름돈을 달라고 하셨다.
그 바쁜 상황에서 "오천 원" 하시든가 "거스름돈"이라고 짧게 말씀하셨어도 충분히 의사는 전달됐을 터인데 "아들!"이라는 호칭을 붙이니 아주머니의 말 한마디가 어찌나 다정하게 들리던지!
장터에서 소소한 감동을 주는 분들을 만나면, 물건을 팔아주는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이 얘기 저 얘기 물어보며 궁둥이를 붙이게 된다. 그렇게 옥수수 파는 아주머니네 좌판 인근에 앉아 있자니, 단골손님 한 분이 오시더니 아주머니 댁 물건이 좋다느니, 심성이 착하다느니 칭찬을 늘어놓으신다.
자두 하나를 얻어 드신 단골손님은 이야기 끝에 다른 곳에서 샀다는 기다란 파프리카를 사람 숫자대로 꺼내 놓으셨다. 실없이 사진만 찍어대고 있는 내 몫도 있었다. 건네받은 파프리카를 맛보고는 옥수수 파는 아주머니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잘 마무리한 하루에 흡족해서 자리를 떠나왔다.
어제는 일 문제로 지인과 문자를 여러 번 주고받았다. 내색할 수 없는 서운한 일이 마음 속에 쟁여져 있다 보니, 상대방이 눈치 채길 의도하며 몇 차례 단답형으로 회신을 거듭했다. 내 속이 편치 않아서일까? 지인의 문자에서도 싸늘함이 감지됐다.
내일은 지인과 전화 통화로 일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내일 전화 통화를 어떻게 응대해야 하지? 온종일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반복하는 빗줄기만큼이나 마음 속은 환해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며 변덕을 부렸다.
야속한 비 때문에 뜬금없이 복집 사장님, 감자를 건넨 지인, 옥수수 팔던 아주머니의 긍정적인 말들의 위력을 떠올리고 나니, 나와 상대방 모두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품격 있는 표현법을 곱씹게 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3
보고 듣고 느끼는 소소한 일상을 욕심껏 남기고자 합니다.
공유하기
마음 속 빗장을 걷어낸 말 한 마디 "또 뵐게요"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