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의 탑10 국민제안 중 '9,900원 K-교통패스(가칭) 도입' 관련 설명페이지
국민제안 사이트
10건의 제안 가운데 가장 많이 득표한 3건은 대통령실에서 국정 운영에 반영시킬 예정이라지만, 어느 하나 충분한 설명이 없다. 예를 들어 '9900원 K-교통패스(가칭) 도입'은 득표율 3위에 올라있지만 '1달간 한시적으로 버스·지하철을 무제한으로 이용가능한 9900원 대중교통 이용권 시범운영'이라는 한 줄이 전부다. 심지어 이마저도 없었다가 지난 25일에서야 생긴 것으로 안다.
현재 투표로만 보면 '9900원 K-교통패스 도입'은 국정 운영에 반영될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화하는데 필요한 예산이나 대상 기간 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서울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불어나는 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9900원 교통패스가 도입되면 정부가 그 적자를 다 메꿀 것인지, 대상을 청소년 또는 노인으로 한정할 것인지, 몇 개월간 진행할 것인지 등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다.
일례로 필자는 한 달 교통비로 10만 원가량을 쓰는데, 이 안에 따르면 정부가 9만 원 정도를 지원하게 되는 셈이다. 국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전 국민의 교통비를 다 지원하면 그 예산은 최소 수천억에서 조 단위에 달할 것이다. 과연 현실성이 있는 제안인지, SNS 한 줄 공약처럼 후퇴되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1인 N표 가능한 국민투표, 괜찮나
투표 시스템도 문제다. '찬성', '반대'가 아니라 '좋아요'만 누르게 되어있다. 국민투표라고 하지만 정교한 시스템보다는, 일반 개인 SNS에서 누르는 '좋아요'처럼 되어있다. 또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청원을 폐지한 이유로 "1인당 아이디를 7~8개까지 만들어 특정 지지층에 편향되게 흐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현재 국민투표 또한 1인이 무궁무진하게 투표할 수 있다.
별다른 로그인 없이도 투표가 가능해 1명이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 등등에서 여러 번 투표할 수 있다. 또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도 국민제안 홈페이지만 알면 투표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외국인이 투표할 가능성은 낮겠지만, 이들이 말하는 '국민'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수 있을까? 과연 이를 국민투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스위스는 1년에 4번 국민투표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투표 주제들도 심오하다. '전 국민 기본소득' 지급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가 스위스에서 올린 매출의 4%를 스위스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도록 하는 안건을 국민투표에 부쳐 통과시켰다. 물론 정부는 각 제안의 내용들도 국민들에게 꼼꼼하게 설명한다. 국민투표 기간이 다가오면 스위스 거리 곳곳에 국민투표안에 관한 홍보 포스터가 게시되고, 유권자들에게는 안내문이 배달된다.
이에 비해 윤석열 정부가 실시하는 국민제안은 몇 회나 할 것인지, 1회성인지 주기적으로 진행할 예정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투표 시스템도 허술하다. 충분한 설명도 없고, 찬반을 묻지도 않고, 1인 다표가 가능한 투표를 과연 제대로 된 '국민투표'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보단 대선 때의 'SNS 한 줄 공약'이 국민투표라는 이름을 달고 부활한 건 아닌지, 우려가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