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고성 아야진 앞바다에서 오징어잡이 조업을 하다 납북된 뒤 1년여 만에 돌아온 승운호.
MBC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자 납북 선원 모두를 남한으로 보내준다는 말이 들렸다. 너무 기뻐 안전원 모르게 모두 얼싸안고 울었다. 그리고 마침내 귀환 날이 정해지자 선장, 기관장, 이정기씨는 선원 아이들을 모아놓고 '여기서 한 사람도 낙오되면 안 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여기에서 나가자. 여기는 지상낙원이 아니라 지옥이다. 꼭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승운호 선원 모두는 그렇게 그립고 그립던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선원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또 다른 고통이었다.
고향에 돌아왔으나 집으로 가는 건 고사하고 가족들조차 만날 수 없었다. 남한으로 돌아온 백여 명의 납북선원들은 바로 속초시청으로 끌려가 지내며 해동여인숙에서 조사받았다. 말만 '조사'였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고문이 자행된 '치욕'과 '고통'의 시간이었다. 고문의 주된 내용은 '특별지령'을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각목으로 하도 맞아 피가 줄줄 흐르고 맞은 자리가 너무 아파 누워 잘 수도 없었다. 어떤 날은 무릎을 꿇게 한 후 구둣발로 허벅지를 무자비하게 밟았다. 물고문을 받을 때는 네 사람이 들어와 양쪽 팔과 다리를 붙들고 수건을 얼굴에 씌운 후 큰 주전자의 물을 부었다. 물고문 한 번에 한 되짜리 보다 조금 더 큰 주전자 두 개 정도의 물을 썼다.
심지어 짬뽕을 시켜주면서 국물은 남기고 건더기만 먹으라 하고는, 나중에 물고문을 할 때 물 대신 짬뽕 국물을 사용했다. 전기고문을 할 때는 의자에 앉혀놓고 묶은 다음 손에 전깃줄을 걸고는 군용전화기를 돌렸다. 몇 번이나 까부라졌는지 모른다. 전기를 세게 넣었다가 약하게 넣어다가 하면서 최대치의 고통을 느끼게 했다. 이 방 저 방에서 고문받는 소리, 악쓰는 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였다.
"(경찰) 조사를 약 10일 정도 받았는데 그때까지 북한에서 올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어요. 피가 나가지고 팬티가 살하고 붙어서 떼지도 못할 정도예요. 속초 유치장에 갔을 때 맞아서 귀에서 계속 물이 나오고 농이 나오니까 간수가 솜을 주더라고요. 사회에 나와서 치료를 했는데도 결국 왼쪽 귀는 거의 안 들렸어요. 물고문 받을 때 고막이 터졌던 모양이에요.
검찰에서는 고문 같은 것은 없었지만, 억압적으로 '너 이 새끼, 경찰에서 한 것 사실이지'하고 물어봐요. 그래서 허위 진술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야만 고문도 안 당하고 경찰로 다시 안 끌려갈 것 같아서요. 사실 경찰에서 처음 조사할 때 북한에서 우리에게 했던 말이나 우리가 북한 사람들에게 했던 말을 전부 해줬었어요."
그렇게 이정기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먹고 살기 위해 오징어잡이를 나갔던 선원은 모진 고문에 범죄자가 되었고 '고문피해자'인 이정기씨에게 국가는 사과는커녕 명예회복을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너무도 억울하게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치욕스런 마음에 아내에게조차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 시절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에게 사면복권이 이뤄지면서 비로소 가족들에게 말할 수 있었다.
진실이 규명되어야 제대로 된 사회
"내가 감시 대상이 되다 보니까 전라도 보성으로 이사 갔을 때도 이사 간 지 일주일도 못됐는데 보성경찰서 정보과에서 임 형사라는 사람이 찾아왔더라고요. 형사 둘이 찾아와서 다짜고짜 '갑시다' 해요. 그래서 그냥 끌려갔어요. 보성경찰서 가서도 일문일답식으로 조사를 받았어요. 납북귀환 과정에 대해 죽 물어보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2010년도까지 저를 감시하더라고요. 수시로 감시를 하고 제가 이동할 때마다 조사하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경찰서로 오라하고도 그래요. 그러니 사회생활이 당연히 안 되지요. 정보과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제가 납북되었던 사실도 몰랐던 친구들이나 지인들도 납북 사실을 알게 되더라고요, 그런 뒤로는 나하고 거리를 두고 생활하게 되는 거죠.
우리 자식들은 시험을 봐도 면접에서 안 되고 탈락하니까 아이들도 취업을 포기하고 스스로 장사를 했어요. 딸 하나가 공무원 시험을 치르러 가서 필기에 합격했는데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거예요. 나중에 왜 탈락했냐고 물어보니까 '아버지 이북 넘어갔다 온 것이 신원조회에 떠 가지고 탈락됐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부모로서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돌이켜보면 납북 어부들, 특히 나이 어린 선원들은 인생을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꺾인 꽃과 같았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단지 먹고 살고 살기 위해 목숨 걸고 바다에 나간 사람들을 모진 고문으로 간첩이니 빨갱이로 만들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까지도 인생을 망가뜨린 걸 생각하면, 이런 것들의 진실이 규명되어야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겠는가? 이정기씨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절규했다.
"사실상 우리 납북어민들 진짜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생계유지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바다에 나간 사람들인데,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승운호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어업에 종사하는 분들, 또 납북되어서 다녀오신 분들 진짜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은 위반이 아닙니다.
벌어 먹고 살겠다고 북한 놈들에게 납치되었는데 그게 무슨 죄 위반입니까. 우리를 모진 고문을 시켜서 죄를 뒤집어씌운 거 아닙니까. 특히 나이 어린 선원들 어디 직장 하나 들어가지도 못하고, 공무원 시험을 봐도 탈락을 하는 과정을 볼 때 국가보안법, 반공법이 철페한다고 할 때 박수쳤어요. 우리 진상규명이 되어야 가족이나 자식들이 똑바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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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시켜주면서 건더기만 먹으라고 한 경찰의 속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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