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반으로 갈라 크림들을 넣어야 했다.
envato elements
거기서 끝이 아니다. 공갈빵같은 고구마 빵에 구멍을 내서 생크림을 넣고, 그 위에 다시 생크림을 묻히고 '카스텔라 가루'를 묻히거나, 계절 상품으로 딸기 가루를 묻히기도 한다. 물론 계절 상품들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등장과 퇴장은 반복한다. 요즘의 '계절 상품'은 '마늘'이다. 크림치즈마요네즈를 넣고 마늘 크림으로 '마사지'한 둥근 소프트롤 빵을 매일 4개씩 만들고 있다.
아직도 '빵 만들기'는 끝이 아니다. 그날 그날 상황에 따라 마늘빵이나 초코슈를 2판 가득 채워 만들기도 하고, 쿠키를 자르거나 세팅해 서너 판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오늘의 빵'이 완료되면, 내일 아침 구울 수 있도록 통식빵을 잘라 슈거 토스트 제품들과 소프트 롤, 베이글 샌드위치를 만들어 냉장칸에 넣어둔다.
몸은 힘들어도 살아갈 힘을 얻다
이렇게 4시간 동안 열 몇 가지의 200개가 넘는 빵을 만드는 것만으로 내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덤웨이터로 올라오는 '생지'와 케이크, 샌드위치 재료를 날라 정리하는 일, 양파 썰기, 튀김기 청소에서부터, 작업장 정리까지가 마무리 되어야 내 일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일들이 4시간이란 시간 동안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도너츠를 튀기는 동안, 다음 과정을 준비해야 하고, 덤웨이터에 올라온 '냉판'들을 정리하고, 또 그러면서 타이머를 체크해야 하는 식이었다.
"설탕 범벅을 만들지 말고!"
견습 기간 동안, '언니'의 지침은 쉴 사이없이 쏟아졌다. 가르치기 위한 것이니 기분나빠하지 말고라고 미리 한 자락 깔아둔 언니는 가차없이(?) '지도 편달'을 해주셨다. 내가 만드는 건 '공산품'이 아니었다. 도너츠에 설탕 하나를 묻히는 것에도 '품격'이 필요했다. 크림은 많이 넣어도 안 되고, 적게 넣어도 안 됐다.
손님이 빵을 베어물었을 때 한 입 가득 크림이 느껴지도록 크림을 리드미컬하게 배열해야 하는 동시에, 낭비가 되지 않도록 아껴서 넣어야 하는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듯했다.
이 나이에 휴지 한 장을 쓰는 것도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되었다. 마우스를 똑딱거리는 것만으로도 터널증후군을 앓던 내 손은 묵직한 얼음 덩어리같은 생지들을 나르고, 냉판을 몇 개씩 거뜬하게 옮겼다. '아니 젊은 애가 왜 그렇게 손 힘이 없어' 언니의 지청구처럼 손아귀의 힘을 조절해 크림을 넣어야 하는데 난 '짤 주머니'를 제대로 쥐는 것조차 버벅거렸다.
아니 무엇보다 4시간 동안 눈 뜨고 코 베어갈 것같은 저 많은 과정들을 '습득'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습득'도 습득이지만, 묻히는 거야 많고 적고 조절하면 되지만, 도대체 '그노무 도넛'들이 도통 제 모양이 나오질 않았다. 직접 만들어 보고 튀겨보면서 '감'으로 익혀야 한다는데 그 '감'이 내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글을 쓴 지 어언 10여 년, 며칠 이상을 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첫 날 일을 하고 돌아오니 녹초가 돼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오전 알바를 하고, 다시 오후에 글을 쓰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당분간 보류해야만 했다. 우선은 '노동'이 몸에 붙어야 했다.
낯선 도시의 차 편이 생소해, 그리고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는 마음에서 매일 걸어서 오고가는 한 시간여의 시간,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아직은 집에 돌아가면 끙끙거리며 기어다니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이 일이 없었다면,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팔자 타령'을 하며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어 갔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바닥을 기다시피해도 다음 날이면 다시 일어나 출근할 힘이 생겼다.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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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동안 200개가 넘는 빵... 매일이 기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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