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간 지인이 보내 준 '방콕' - 눈으로만 휴가
이정희
휴가는 언감생심
7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부쩍 '휴가' 이야기에 대한 빈도수가 높아졌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하며 바다 노래도 자주 출몰한다. 청취자 중에 바다니, 계곡이니 하며 떠난 곳에서 사연을 보낸 이들도 있다. 그걸 들으니 '아~ 휴가철이구나' 싶다.
휴가? 알바에게 휴가는 언감생심이다. 왜냐하면 알바는 일하는 만큼 돈을 받기 때문이다. 사람이 들어갈 때 맘 다르고 나갈 때 맘 다르다더니, 일을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할 때는 언제고 막상 일을 하고 한 달이 다가오니 심란해졌다. 8시에서 12시까지 딱 내가 기존에 하던 일과 병행하기 좋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2022년 시급 9150원에 내가 일한 날짜를 계산해 보니 100만 원도 안 되는 거였다.
아들은 오랜 시간 내가 글을 써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명예직'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 내내 열심히 써도 30만 원을 받기가 빠듯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가르치는 일도 가물에 콩나듯, 그래도 오랜 시간 해온 그 일들을 놓지 못해 오전 시간만 할 수 있는 알바를 구했는데, 이리저리 따져봐도 매달 나가는 빚을 갚고나면 생활비가 너무 빠듯하다. 종일 알바를 구해야 하나.
아직 일은 일대로 힘들고, 적응하지 못해 몸은 몸대로 고된 채 한 달이 되어갈 즈음,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이거 참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구나 싶으니 기운이 나질 않았다. 오죽하면 매일 라디오에서 사연을 보내주신 분께는 '백화점 상품권'을 보내드린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여, 저걸로다가 돈을 더 벌어봐? 하며 사연을 보내봤을까.
사실 오랜 시간 글을 써온 내가, 새삼 라디오 사연을 보내는 게 어쩐지 반칙인 거 같았지만 백화점을 가본 지가 오래된 내게, 그 백화점 상품권이 오아시스처럼 보였다. 얼마 짜린지는 몰라도, 그 백화점 상품권 하나면 장을 푸짐하게 보겠다며 혼자 꿈에 부풀었다.
쓰던 가락이 있어서인지 처음 보낸 사연이 당첨되었다. 매일 날마다 출근길에 서있는 오래된 거리의 가로수들을 보며, 그들이 견뎌온 세월을 떠올리며 내 마음을 다잡는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마침 근무하던 일요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내 사연에 기사님과 함께 손을 맞잡고 좋아한 것도 잠시, 백화점 상품권이 도착할 날만 학수고대했다.
그 '견물생심' 백화점 상품권에는 후일담이 있다. 벼르고 벼르던 백화점 상품권, 그런데 라디오 당첨 선물은 목이 빠지다 못해 지쳐버릴 두 달 정도 되었을 때 도착했다. 등기가 도착한 그 시간 일을 하는 시간이어서 우편함에 넣어 달라고 했는데 가보니 없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받은 상품권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상품권을 받는다는 사실에 흥분한 내가 집주소 숫자 표기를 잘못했던 것이다. 다른 집으로 간 상품권, 그 집 우편함을 열어봤지만 아무 것도 없었고, 급한 맘에 그 집까지 찾아가서 물어봤는데 주인 할아버지의 노발대발만 마주하게 되었다. 다 된 밥에 코빠뜨린다더니... 막상 속이 상해야 하는데, 내가 자초한 어이없는 상황을 깨닫고 나니 외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아, 내가 아직 백화점 들락거릴 때가 아니구나.
백화점 상품권 이야기는 후일담이지만 당시 그만큼 내 마음이 쫓겼었다. 살림을 작파하고 나섰는데 내 생활을 감당해야한다는 부담이 컸었다. 더구나 일을 시작한 첫 달, 아직 알바와 오후의 일을 병행하기 힘들어 오후에 글쓰는 일을 쉬고 오전 일을 하고 돌아오면 무작정 쉬고 보니 더 마음이 쫓겼었다. 그래도 한 달이 흘러 드디어 빵집 알바로 일한 첫 달의 돈을 받는 날이 되었다.